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한 다음달인 2009년 6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대외 정책에 관한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中央外事工作領導小組·이하 외사영도소조)에 대북정책 재검토를 지시했다. 본격적인 핵 보유의 길을 걷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검토를 요구한 것이다.
두 달 뒤인 8월 초, 후 주석이 주재한 외사영도소조 회의가 개최됐다. 2박3일간 열린 이 회의에는 조장인 후 주석과 부조장인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당시 국가부주석), 비서장을 맡고 있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 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외교·국방 라인의 최고위급 인사 10여명이 참석했다.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문제특별소조도 함께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북한 핵개발에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쪽은 "북한이 이미 2차례 핵실험을 한 만큼 중국은 이제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북핵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당사자가 됐다"(한 참석자)는 논리를 폈다. 이에따라 북한이 미·중 간 완충지대라는 기존의 지정학적 전략을 폐기하고, 석유·식량 지원도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한반도 급변사태시 중국의 개입 근거가 되는 북중우호조약의 파기도 거론했다. 6자회담을 기본 틀로 하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전면 개편하고, 강도 높은 대북 응징을 통해 핵 보유국으로 가는 길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친북파 쪽에서는 북핵 수준이 아직 무기화 단계에 이르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기존대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대북 압박이 북한의 체제 붕괴로 이어져, 북·중 국경으로 탈북 난민이 대거 유입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또 북한이 짐이 아니라 한·미·일 3국으로 이어지는 대중 포위망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라는 관점도 제시했다.
회의 결과 나온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결론은 부전(不戰·전쟁 방지), 불란(不亂·혼란 방지), 무핵(無核·비핵화)의 6글자로 요약됐다. 북한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포함하는 기존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북핵 문제와 북·중 관계를 분리하고, 북핵과 관계없이 북한과 관계를 강화한다는 노선도 결정했다고 한 중국 측 전문가는 전했다.
중국은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된 이후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2003년 초에는 3일, 6자회담에 불참한 2004년 초에는 3달에 걸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송유관을 끊었다.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는 "감히(悍然)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격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외사영도소조의 결론이 나온 뒤에는 대북 감싸기로 돌아선다. 소조 회의가 끝난 직후인 그해 8월 말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수석대표가 4박5일간 방북했고, 이어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평양을 찾아 본격적인 관계 회복에 돌입했다. 원 총리는 방북 길에 평양 부근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들러 북한에 대한 우회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중국의 대북 전략의 이면에는 '경제 발전에 필요한 환경(한반도 안정)의 확보'라는 논리가 숨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본격적인 핵 보유는 오히려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더 높일 것이라는 지적이 중국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새로 들어설 시진핑 체제의 외교·안보 라인이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전문가는 "중국이 북핵에 대한 정책 전환을 못하는 주요인 중 하나는 기존 정책을 수립한 인물들이 여전히 외교·안보 라인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중국 외교·안보라인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