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크로아티아와의 A매치에 나섰던 국가대표 손흥민(21·사진)과 나흘 뒤 소속팀 함부르크의 공격수로 나선 그는 딴사람 같았다. 크로아티아전에서 45분간 슈팅 한 개에 그쳤던 손흥민은 10일 도르트문트와의 독일 분데스리가 21라운드에선 두 골을 몰아넣으며 4대1 대승의 주역이 됐다. 그는 12일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가 선정한 라운드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한국인 선수로는 차범근(SBS 해설위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4대 빅리그로 꼽힌다. 그 세계적인 무대에서 손흥민은 올 시즌 20경기에서 9골로 리그 득점 9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A매치에선 단 한 골(12경기)이 전부다. 분데스리가를 주름잡는 그가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수행하는 역할이 다르다. 손흥민은 한국 대표팀에선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뛴다. 최강희호(號)에서 측면 공격수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포지션이다. 반면 함부르크의 손흥민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프리 롤(free role)'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토어스텐 핑크 함부르크 감독은 손흥민에게 수비 가담 대신 적극적인 공격을 주문한다. 덕분에 손흥민은 공격에 방점을 찍고 움직인다.

함부르크에서 손흥민의 주요 득점 방식은 중원이나 측면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침투 패스를 받아 드리블로 돌파한 뒤 마무리하는 '속공'이다. 올 시즌 손흥민이 기록한 9골 중 6골이 역습이나 상대 공을 뺏은 뒤 공격이 빠르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난 크로아티아전의 손흥민은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와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식의 단순한 공격을 펼쳤다. 오른쪽의 이청용(25·볼턴)이 주로 볼을 잡고 움직였다. 공격에서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손흥민은 전반 초반 시원한 중거리 슈팅을 날린 이후엔 한국 공격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은 현(現) 대표팀 동료와도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적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 런던올림픽 엔트리에 뽑히지 못해 박주영(28)·구자철(24)·기성용(24) 등 대표팀 주축 선수들과도 많이 뛰어보지 못했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팀에선 뛴 것이 동북고 1학년 때뿐이다. 나이·학번에 따라 서열이 뚜렷한 '한국식 선후배 문화'에 익숙지 않다. 아버지 손웅정(51)씨에게 '개인 교습'으로 축구를 배운 그는 동북고 축구부에서 잠깐 뛰다가 곧바로 함부르크에 입단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는 "함부르크에서 오래 뛴 손흥민에게 대표팀은 낯선 환경"이라며 "대표팀에서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볼 처리가 한 박자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카타르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5차전까지는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다. 최강희 축구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낼까. 최 감독은 "손흥민의 활용을 놓고 고민이 많다"며 "크로아티아전에서 시험해봤던 공격 조합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