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Dell)이 델을 되찾았다. 25년 만의 일이다.

세계 3위 컴퓨터 회사인 델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델(47)이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손잡고 델을 인수한다고 5일(현지시각) 밝혔다. 델은 1988년 상장됐던 델을 인수해 비상장 회사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인수가는 244억달러(26조6000억원). 차입인수거래(LBO) 방식으로는 2007년 7월 이후 최대 규모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LBO란 인수 우호 세력들로부터 돈을 빌려 기업을 사들이는 방식을 말한다.

컴퓨터 회사 델이 25년 만에 비상장 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은 '재창업'에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가 델의 이번 모험은 최근 10년 간 급성장 중인 모바일 시장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실적 지상주의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대학 시절 자신이 세운 회사의 유산을 스스로 되살리겠다는 결의의 표시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CEO 델의 열정과는 별개로 컴퓨터 회사 델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1984년 창업…1988년 상장…2007년 CEO 복귀

델은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선두주자였다. 창업자 델이 1984년 텍사스대 재학 시절 기숙사에서 청춘을 불사르며 세운 회사가 시작이었다. 당시 생물학도였던 19살의 델은 IBM 컴퓨터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하는 일로 부업을 삼았다. 그 일로 월 8만달러(8700만원)씩 벌면서, 자신이 직접 PC를 제작하면 IBM이나 컴팩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달 만에 자체 디자인한 컴퓨터를 만들어냈고 고객 주문이 쏟아졌다. 숨가쁜 성장을 기반으로 1988년에는 기업 상장까지 하며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부침도 많았다. 1990년대 초반 저가 판매 전략이 오히려 수익을 갉아먹으면서 회사가 휘청거렸고 경영 경험이 없던 델의 한계도 바닥을 드러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델은 1996년 당시 베인앤컴퍼니 부사장 케빈 롤린스를 영입한 뒤 공동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결국 2004년 델은 CEO 자리까지 내주며 경영권을 롤린스에게 넘겼지만 각종 파문으로 회사는 어려움에 처했다. 2007년 그는 다시 CEO로 복귀했다.

델의 직접 인수를 결행키로 한 것은 작년 8월. 그는 회사 이사회에 제의했다. 델을 다시 갖고 싶다고. 이사진들에게 자신이 인수 적임자라고 설명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곧바로 진지한 협상이 시작됐다. 암호명은 '미스터 데날리'. 벨은 텍사스주 라운드록에서 캘리포니아로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이사진과 줄다리기를 했지만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가격을 놓고 흥정이 몇 차례나 결렬됐다. 특히 거래 성사를 앞둔 최종 몇 주동안에는 더 그랬다. 협상 초기 인수가는 주당 12달러에서 출발, 결국 주당 13.65달러로 합의됐다. 협상 6개월 만이었다. 델의 52주간 평균 주가인 18.36달러에는 훨씬 못 미친다.

통상 차입인수거래(LBO)의 경우 LBO 기업들이 주도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델의 작품이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어디서 얼마씩 차입하는지 구체적인 액수에 대해선 외신별로 차이가 있다. 블룸버그는 델이 보유한 지분 15.7%(36억달러 상당)에다 현금 7억달러를 비롯해 실버레이크의 투자금 14억달러, MS 대출금 20억달러, 은행들을 통한 대출금 130억달러로 충당했다고 보도했다.

◆ 공격 경영 선언, 전망은 엇갈려

델은 이번 변신을 통해 보다 공격적이고 혁신적인 사업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단기 실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상장사의 지위를 버리고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다는 각오다. 델은 "대형 업체들에 소프트웨어 제공 서비스를 확대하는 전략을 통해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자로서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델의 모험을 두고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주류를 이루는 시점에 델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하나. 델이 CEO로 복귀하던 2007년 그는 "지금이 1984년처럼 느껴지며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애플은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고 PC시장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경쟁사인 휴렛패커드는 이날 델의 인수 거래 발표 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회사가 장기간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고 고객들에게도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델과 MS가 손을 잡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리서치회사인 포레스터의 데이브 존슨 애널리스트는 FT에 "마이클 델이 다시 CEO로 복귀한 뒤 잇따라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인수한 것이나 이번에 MS와 손을 잡게 된 것은 P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델과 MS가 함께 일하게 된다면 생각보다 강력한 조합이 될 수 있고 판도를 바꿀 잠재력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