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한창이었고, 부산 피란 생활은 고단했다. 신혼의 화가는 꽃다운 아내의 아름다운 몸을 너무나도 그리고 싶었다. 팔레트가 없어 깨진 유리에 물감을 짜고, 검정 물감이 없어 연탄 부스러기를 사용했다. 검정 천을 치마처럼 두르고 상반신을 드러낸 아내는 왼손에 해바라기 한 송이를 쥐고 오른손으론 턱을 괸 채 고혹적인 표정으로 남편을 응시한다. 권옥연(1923~2011)의 1951년작 '부인상'이다.

권옥연의 1951년작 '부인상'.

국내 화가 41명의 여성 누드 작품 51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20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열리는 '화가의 여인, 裸婦: 한국 근현대 누드걸작전 1930~2000'. 서구 문화의 소산인 '누드'가 우리 땅에서 어떻게 정착하고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전시다. 성윤진 롯데갤러리 큐레이터는 "유교문화 때문에 여성 누드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우리나라 화가들은 '자신의 여인'을 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른아홉에 요절한 손상기(1949~1988)는 1978년 자신과 아내를 소재로 '화가와 여인'을 그렸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있는 남녀의 상반신 누드만 드러난 그림이다. 구루병을 앓았던 작가는 자신의 신체적 결점까지 가감 없이 그렸다. 작가의 큰 눈망울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흠뻑 담겨 있지만, 여자의 표정에선 불안과 망설임이 묻어난다. 아내는 곧 가출했고,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렸던 화가는 10년 후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

전시에는 이 밖에 일제강점기 '천재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초록배경의 누드'(1935),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김흥수(94)의 '누드'(1980), 전업 모델을 그린 전혁림(1916~2010)의 '누드'(1979) 등이 나왔다. (02)726-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