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친위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들어 관료사회를 자주 질타하고 있는 박 당선인이 감사원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 당선인은 복지확대를 위한 세출 구조조정에서 감사원의 역할을 주문했다.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관료 사회가 박 당선인의 135조원 규모 복지확대 약속 이행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감사원의 역할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공직사회 전반의 활력저하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박 당선인, 복지공약 이행에 소극적인 관료사회 질타
"접시를 닦다가 깨뜨리는 것은 용납될 수 있지만 (접시를)깨뜨릴까봐 두려워서 닦지도 않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이 같이 말하며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강하게 질타했다. 또 지난 5차례의 국정과제 토론회에서도 '공직사회의 무사안일', '보신주의 해소', '지나친 패배주의적 사고' 등의 어휘로 공직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처럼 박 당선인이 정부 출범 전부터 공직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최근 제기된 ‘공약 수정론 또는 출구전략론’과 큰 연관이 있다는 게 인수위 안팎의 시각이다.
인수위는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에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 확보 방안을 1월 말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아직 최종 확정된 방안을 받지 못했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중간 보고 형식으로 집계된 방안을 몇번 가지고 왔지만 아직 확정안은 보고받지 못했다”면서 “31일에 찾아와서 2월안에는 내겠다는 말만 하고 갔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수위는 각 부처별로 박 당선인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예산 절감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들마다 박 당선인의 공약에 맞게 만족스러운 절감안을 가져온 부처는 없었다는 것이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인수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을 세우는 것인데 각 부처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감사원만 존명(尊命)’···“세출 구조조정 감사에 역점”
반면 감사원은 다른 부처와 달리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일을 수행하겠다며 발벗고 나서고 있다. 다른 부처에서 난색을 표하는 일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세출 구조조정 작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감사원은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세출 구조조정 감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 공약 이행을 위한 예산안 절감을 놓고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물론 해당 부처마다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감사원이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중순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복지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복지전달체계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당선인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5년 간 재원 135조원 중에 10조6000억원을 복지행정 개혁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당선인은 "감사원이 세출 구조조정 감사를 통해서 불요불급한 사업, 통폐합이 필요한 유사 중복 사업을 찾아낼 계획이라고 그러는데 차질 없이 되도록 협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정부 사업에서 비효율과 비리가 아주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정부 사업 관련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그 대안을 마련하는 일도 주요 과제로 추진해 달라"며 감사원에 힘을 실어줬다.
◆ 감사원, 경제부처 휘어잡는 역할하나
관가에서는 박 당선인이 감사원을 활용해 공직기강 잡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관료들 사이에서도 콧대 높기로 소문난 경제부처를 잡기 위한 카드로 감사원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번 인수위에 파견된 감사원 공무원들의 면면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무분과에는 신민철 감사원 금융기금감사국장이 전문위원으로, 유병호 재정경제감사국 제1과장이 실무위원으로 파견됐다. 감사원의 경제부문 실무책임자들이 인수위에 온 것이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에 성용락 당시 감사원 홍보관리실장과 별도 보직이 없던 홍순범 과장이 파견된 것과는 다른 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이같은 감사원의 역할 확대 조짐에 대한 공직사회의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한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유사·중복된 복지예산사업을 걸러내거나 구조적으로 낭비요인이 큰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찾아내 전달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감사원이 더 효과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감사원이 이런 일에 역량을 집중하면 효과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경제부처 공무원은 “만약 감사원이 각종 정책판단에도 간섭하기 시작하면 될 일도 안 된다"며 "복지부동을 뛰어넘어 아무것도 안 하고 권력의 방향만 살피는 수동적인 분위기가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