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주필

박근혜 당선인은 중요 인사를 발표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누구와 의견을 맞춰보는 것일까. 선거 공약을 글자 그대로 정책에 옮길 것이냐 아니면 가지치기를 통해 큰 공약과 작은 공약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것이냐는 누구와 상의해 최종 방향을 정하는 것일까. 깜깜한 인사, 오리무중(五里霧中) 정국의 바닥에는 이런 의문이 가라앉아 있다.

이번 참에 용한 줄을 대 한자리 할 데 없나 넘보는 사람들만의 궁금증이 아니다. 기대 반(半) 걱정 반으로 당선인을 지켜보는 국민 가슴에도 이런 의문이 자라고 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당선인의 정치적·정책적 최종 의논 상대는 아닌 듯하다. 국민이 알지 못하는 다른 누가 따로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떠도는 소문처럼 밤늦도록 당선인의 '유명한 수첩'을 꺼내 펼쳐보며 그때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지금 이 자리의 크기를 견줘보고 고심(苦心)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대통령이 나라의 대소사(大小事)를 직접 낱낱이 챙기던 '만기친람(萬機親覽) 시대'로 되돌아간다는 예고(豫告)나 한가지다.

당선인의 말과 행동에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삭여온 '권력의 본질'과 '권력을 둘러싼 인간들의 생리'에 관한 체험이 짙게 배어 있다. 특유의 용인술(用人術)과 국정 운영 철학의 뿌리도 이 '체험적 권력론'에 닿아 있다. 당선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당선인보다 더 오래 국가 최고 권력의 운용 방식을 지켜본 사람은 없다. 너무 어렸던 터라 권력을 어떻게 얻는가와 관련된 기억은 희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최고 권력을 둘러싼 이른바 실세(實勢)들은 왜 무엇을 놓고 피 터지는 싸움을 벌여 끝내는 권력 전체의 파국(破局)을 불러왔는가를 당선인만큼 뼈저리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충성심이 부족한 게 탈이 아니라 충성심이 흘러 넘쳐나는 게 문제처럼 느껴지던 그들이 권력이 사라진 다음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던 모습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당선인을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준 건 노쇠(老衰)한 어제의 실세들이 아니다. 넘어질 때마다 붙들어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국민이다.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어왔지만 나라의 오랜 가난을 물리치고 부강(富强)한 경제의 터전을 닦은 당선인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도 국민이다. 당선인은 필시 그렇게 믿고 있을 터이다. 이 '기억과 체험의 정치학'이 '박근혜 정치관'의 뼈대를 이루고 이 등대 불빛에 기대서 어렴풋이나마 '박근혜 시대'의 정치 항로(航路)를 내다볼 수 있다.

당선인더러 사람 쓰는 방법을 바꾸라고 한다. 보안(保安)보다 검증을 우선하라고 한다. 한 걸음 더 나가 '책임 총리'나 대통령 비서실장을 서둘러 내세워 당선인 혼자 걸머진 인사(人事)의 짐을 나눠서 지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겁에 질려 입 밖에 내질 못해서 그렇지 스스로를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여겨온 사람들 속은 더 부글부글한다.

당선인이 기대고 있는 '기억과 체험의 정치학'은 이런 요구와 충고에 분명하게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사 과정이 투명하게 될수록 추천하는 사람과 추천받는 사람의 관계를 더 여실히 드러낸다. 권위주의 시대엔 누가 누구를 어느 자리에 얼마나 앉히느냐에 따라 권력 내 파벌이 갈리고 권력 내 2인자 서열이 정해졌다. 2인자 자리를 둘러싼 암투(暗鬪)가 끝내는 정권의 수명을 재촉했다. 당선인이 지켜본 시대가 그랬다. 이명박 정권에서 비주류(非主流)를 이끌면서도 비주류 안의 2인자조차 분명히 하지 않으려 한 것도 그 기억의 후유증 탓일 것이다. 그런 당선인이 정권의 2인자가 누구라고 공표(公表)하는 방식의 인사를 할 턱이 없다. 인사 안개가 쉬 걷히기 힘들다는 말이다.

재원 조달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 선거 공약을 수정·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전망도 밝지 않다. 공약을 역경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좌절 속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확신하는 당선인이 그 믿음을 스스로 허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앞을 내다보고 바꾸지 않으면 겪고 난 다음에 바꾸게 된다. 부작용과 불편은 나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선인 주위에 커가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돼 지금껏 당선인을 성공으로 이끈 '기억과 체험의 정치학'이 국민 소통 시대와 부딪쳐 불화(不和)하는 마찰음(摩擦音)이다. '성공의 덫'은 '실패의 덫'보다 더 헤어나기 힘들다. 권력 주변 어느 누가 당선인이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성공의 사다리'를 가리키며 '그게 실패의 덫이 될지 모른다'는 간(肝) 큰 소리를 입 밖에 내겠는가. 대통령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는 정직한 거울 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게 최고 권력자의 절대 고독이다. 거울을 밖에서 구하지 못하면 스스로 거울이 되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