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화난 신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바위에 묶었다. 날마다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그래도 프로메테우스는 죽지 않았다. 뜯어 먹힌 간이 밤사이 다시 돋아났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간이 재생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봤다. 플라톤은 간이 노여움, 질투, 탐욕 같은 '어두운 인간 감정'이 움트는 곳이라고 했다. 탈무드도 분노의 감정이 간에서 피어오른다고 했다.

▶지중해 사람들은 제물로 바친 양을 잡으면 간을 베어내 그 모양과 색깔로 신의 뜻을 점쳤다. 페르시아인은 간을 용기(勇氣), 힘, '최고로 좋은 것'에 비유했다. 우리도 배짱이 두둑한 사람을 '간 큰 사람'이라 하고, 무모한 사람을 '간이 부었다'고 한다. 겁을 먹어 잔뜩 졸아들었을 때 '간이 콩알만 해졌다'고 한다. 집 안에서 남자가 부엌살림을 전혀 거들지 않을 때 '간 큰 사내'라고 놀렸다.

▶한의학에서는 간의 기운이 강하면 추진력과 결단력이 좋다고 한다. 간은 웬만큼 고통이 와도 몸 주인에게 아프다고 하소연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의 장기(臟器)'로 통한다. 하지만 이 간에는 자칫하면 기름이 낀다. 5년 전 미국·유럽·호주에서 조사했더니 어린이 2~5% 정도가 비(非)알코올성 지방간을 앓고 있었다.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그리고 뚱뚱한 애가 주로 지방간에 걸렸다. 자각 증세가 없어 초기 몇 년은 눈치채기도 힘들다.

▶한국인들도 흰쌀밥·빵 같은 탄수화물, 커피·초콜릿에 든 당분을 많이 먹으면서 지방간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엊그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내 어른 가운데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걸린 비율이 2004년 11.5%에서 2010년 23.6%로 곱절 이상 늘었다고 했다. 지방간은 기름이 5% 이상일 때를 말하는데 흔히 술을 많이 마시면 생긴다. 그렇지만 입에 술 한 방울 대지 않고도 운동을 멀리한 탓에 지방간을 앓는 환자가 많아졌다.

▶프랑스 고급 요리에 '푸아 그라'가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지방간'이다. 거위 입에 깔때기를 꽂고 콩을 강제로 먹여 지방간으로 키운 뒤 나중에 그걸 익혀 먹는다. 동물 학대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와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푸아 그라 요리를 금지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을 학대해선 안 되고 편히 쉬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현대인의 간은 술과 상관없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올해는 간 떨어질 만큼 사람 놀라게 할 일이라도 적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