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고가의 예술품을 사고파는 뉴욕 미술품 경매장에는 ‘샹들리에 입찰(chandelier bidding)’이란 말이 있다. 작품이나 물건은 경매장에 등장하지 않은 채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를 말한다. 입찰이 진행되는 내내 경매 진행자가 천장의 샹들리에만 가리키고 있는 데서 ‘샹들리에 입찰’이란 별명도 나왔다. 물건도 없이 거액의 값을 부르고 낙찰받는 경매장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소더비 같은 유명 경매장에서는 이런 입찰이 합법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성행이다. 2012 봄 경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미국 예술품 시장의 요지경 같은 실태를 2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가 조명했다.
초점은 고가 예술품에 대한 당국의 허술한 규제망이다. NYT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수억달러씩 내고 작품을 사들이는 것이 뉴욕 경제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동안 도입된 여러 규제는 최근의 추세를 따라잡지도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인 제임스 R 헤지스 4세는 NYT에 “이 업계가 1980년대에는 개인의 자본시장, 1990년대에는 헤지펀드의 자본시장 취급을 받아왔다”며 “사실상 감독이나 규제가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예술품 경매 시장의 뒤틀린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샹들리에 입찰’이다. 현물이 거래돼야 하는 경매장의 방에 정작 입찰 물건인 작품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NYT는 “샹들리에 입찰을 금지하려고 수년에 걸쳐 뉴욕주의 올버니 시에서 제출된 법안만 9개에 이르지만, 다 실패했다”고 썼다.
경매 회사들은 이런 방식의 입찰을 통해 판매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인 A 레빈 소더비 부사장은 “사람들은 예술품 시장이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NYT는 예술품을 취급하는 화랑 등이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제품이나 예술품에 가격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한 법도 공공연히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주에서는 본래 법에 따라 어떤 물품이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물건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NYT가 화랑 10곳을 무작위로 방문해 본 결과, 그림에 가격표를 붙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예술품 거래상들은 “공개된 갤러리에서 값비싼 작품에 가격표를 붙일 경우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작품 전시의 미학도 훼손한다”며 항변했다.
작품을 파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낙찰가를 보증해 주는 ‘개런티’ 제도 역시 부작용 투성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개런티 제도란 통상 작품을 파는 사람이 일정 값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있게 경매 회사가 익명의 보증자를 세우는데, 입찰 가격이 보증 가격을 넘길 경우 일정 수수료를 떼어가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이런 제도가 결국 경매의 본질을 헤친다는 것.
세계 최대 경매회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의 임원을 지낸 마이클 플럼머는 NYT에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규제든 스스로 강화돼야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 시장이 스스로 그만한 규율을 갖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