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충북의 한 고교 교무실에는 대학 교수들이 찾아온다. 교수 손에는 커피믹스와 음료수 박스가 들려있다. 교수들은 쭈뼛거리며 고3 담임 교사들에게 "올해도 우리 학교 좀 잘 봐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이 자기 대학에 원서를 많이 쓰게 해달라는 뜻이다. 교수들은 또 수시와 정시 원서 접수를 앞두고 다시 한 번 고교를 찾아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고등학교에는 '교수 출입 금지'라는 경고문이 내걸리는 곳도 있다. 일부 대학 교수들은 고3 교사들에게 회식을 시켜주고 회식 후에는 현금 봉투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부실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가 고교로 찾아가 “신입생을 보내달라”며 교사들에게 로비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치러진 2013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수험생들이 예비 종이 울리기 전 시험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경남의 한 여고 교사는 "대학에서 한창 강의를 할 평일 낮에 고교를 수시로 찾아오는 교수들을 보면 '학생 등록금을 저렇게 낭비하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들, 학생 보내고 받은 돈으로 유흥주점서 회식

포항의 한 사립전문대가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학생 1명이 지원할 때마다 20만원씩을 고교 교사에게 건넨 범행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2007년 4월 이 대학 교수와 교직원들은 포항과 경주, 울산 등 인근 지역 고교에 홍보활동을 나갔다. 주로 3학년 학년부장을 만나 대학을 소개하고,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과정에서 슬쩍 "학생 모집이 완료되면 1인당 20만원씩 사례비를 주겠다"는 약속을 빼놓지 않았다. 포항의 다른 대학 관계자는 "학생 모집이 어려운 전문대의 경우, 주로 성적이 좋지 못한 전문계 고교를 노려 '두당(頭當) 치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교사는 '뭘 해줄 거냐'고 되레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검찰 관계자는 "한 학생은 자신이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입학원서가 제출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주의 한 교사는 같은 기간 2480만원을, 포항의 또 다른 교사는 2200만원을 각각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한 교사는 3년간 239명을 보내고 4780만원을 받았다.

이렇게 돈을 받은 교사는 무려 48명. 이 중 1000만원 이상을 받은 교사도 7명이었다. 3학년 부장 교사들은 받은 돈을 유흥주점 등에서 회식비로 쓰거나, 몇몇은 3학년 담임들과 '보너스'처럼 나눠 쓰기도 했다.

◇일부 고교 '교수 출입금지' 경고문도

대학들이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고교 교사들에게 '로비'를 하는 관행은 수십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대학이 급증하면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게 된 대학들이 '졸업장 장사'를 하기 위해 각종 수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부실대학의 학생모집 부담은 대부분 교수들에게 떨어진다.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1명당 학생 ○○명을 모집해오라"고 배당을 주기도 한다. 일부 대학은 신입생 유치 실적을 재(再)임용에 반영, 교수들 사이에서 "교수가 영업사원하고 다를 바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들의 고교 교사 로비 백태는 2010년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났다. 경기도 A대는 지난 2003년부터 13차례 고교 진학부장들을 중국으로 '해외 워크숍'을 보냈다. 명목은 '워크숍'이지만 사실상 학생을 보내달라는 '접대성 외유'인 셈이다. 입학설명회도 로비의 통로였다. 경기 C대는 아예 입시설명회를 1박 2일 동안 리조트에서 열면서 교사 가족까지 초청했다.

이런 관행이 이어지다 보니 고교 교사들이 대학에 '로비'를 요구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충남의 한 고3 부장 교사는 "동료 교사 중에는 대학 교수에게 '다른 대학은 (상품권, 선물 등) 더 많이 주는데, 왜 당신 대학은 이것밖에 안 주느냐'고 타박을 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들의 로비 관행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저(低)출산 영향으로 대학들의 학생 모집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의 한 원로는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교수와 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부정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이 망가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