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을 지나 계단 40개를 헉헉대며 올라왔는데, 수화기 너머 지시는 계속됐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열 계단을 더 오르고, 그다음에 좌회전, 그다음에 우회전, 그리고 다시…." 이 꼭대기에 언제 이런 골목이 생겼을까 싶은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꼬불꼬불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서 20미터 전진해서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 문!" 드디어 도착. 땅 아래 세상에서 20분쯤 올라온 꼭대기 단독주택 3층에 현대무용가 안은미(51)씨가 꾸며놓은 '궁궐'이 있었다.

안씨는 한남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여왕처럼 산다. 20평(66㎡)이 조금 넘는 집은 그가 고치고 꾸미고 가꿨다. 침대 하나 들어가니 꽉 차는 방, 커다란 창이 달린 서재, 의상과 소품으로 가득 찬 옷방 그리고 부엌이 있다. "색(色)이 없으면 숨이 막힌다"는 취향대로 사방이 알록달록하다. 청록색 벽지에 빨간 콘센트 커버, 오렌지색 블라인드가 달렸다. 그는 무엇이든 가지런하지 않으면 자다가도 눈이 뜨이는 '정리의 여왕'이다. 식기, 책, 방석, 서류, 장신구가 반듯반듯하고, 벽과 바닥은 반질반질하다.

강남의 초호화 빌라 부럽지 않은 이 집은 그의 소유가 아니다. 월세 44만원에 세들어 있다. 원래 50만원에 나온 월세를 6만원이나 깎았다. 거기에 그가 '당당한 세입자로 사는 행복의 비법'이 숨어 있다.

행복을 위한 일보 전진, 일보 후퇴

1992년부터 미국 뉴욕대에서 공부하던 그는 2000년 대구 시립무용단 단장을 맡으며 귀국했다. 대구에서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원룸에서 3년7개월간 지냈다. 단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전셋집을 찾기 시작했다. 용산구 보광동 꼭대기에 방 3개짜리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가슴이 뻥 뚫렸다. "그래, 이런 데서 살아야 해!"

“이 넓은 세상을 매일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세입자라도 마음은 온 세상의 주인이죠.”서울 용산구 한남동 집 옥상에 선 무용가 안은미씨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 보였다.

전세 5000만원 집에서 6년을 살며 협상의 기술을 익혔다. 시작은 보일러. 오래된 보일러는 수시로 작동을 멈췄다. 주인에게 제안했다. "반반씩 냅시다!" 25만원씩 내고 50만원짜리 최신식 보일러로 교체하니 방이 절절 끓었다. 대신 주인의 양해를 얻어 집을 마음대로 꾸미기 시작했다. 원래 갈색이던 방문, 현관문, 창틀을 죄다 하얗게 칠하는 데 70만원이 들었다. 침실은 분홍, 공부방은 노랑, 부엌은 하양으로 바꿨다. 가장 골치 아픈 곳이 욕실이었다. 타일 전체를 바꾸려면 300만원은 들었다. 고민 끝에 땡땡이 스티커를 벽마다 붙여 분위기를 확 바꿨다.

어느 날 외국에 다녀왔더니 집이 물바다가 돼 있었다. 지붕에서 물이 샜다. "6년이나 살았으니 이사를 가볼까?" 그새 세상은 전세가 없어지고 월세가 득세했다. 물어물어 집을 보러 다니다 지금 사는 한남동 집을 찾았다. 역시 전망은 좋았다. 하지만 30년 된 집은 새는 물을 막기 위해 천장에 임시변통으로 발라놓은 도배지가 수십겹이었다. 방수 공사 견적이 최소 300만원. 안씨는 주인에게 제안한다. "우리 윈윈(win-win)합시다. 주인께서는 집이 잘 보존되는 게 좋고, 저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4년 계약서를 쓰고 매달 6만원씩 깎아주세요. 4년이면 288만원, 매달 푼돈으로 공사비 목돈 주시는 셈이죠. 대신 저는 4년 동안 제 집처럼 예쁘고 깨끗하게 살게요."

안씨는 "고맙게도 주인이 선뜻 응해줬다"며 "대신 저는 신용을 지키기 위해 월세는 반드시 제날짜에 낸다"고 했다. "법적으로 주인의 의무라고 해서 무조건 해달라고 싸우다 보면 서로 불쾌하죠. 행복에도 감가상각이 있다면 적당히 손해 보는 듯하면서 부지런하게 틈을 메우는 게 현명한 것 같아요."

"삶에 허점이 있어야 행복해진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로 살았던 긴 세월이 저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학교 발표회 때는 중국요릿집 수십 곳에서 얻은 나무젓가락 수천개로 무대 장치도 만들었던 안씨다. 이제는 벽지와 싱크대 박사가 됐다. 을지로나 종로 어디에 가야 싸게 사는지 훤하다. "돈이 있어서 남에게 인테리어를 맡길 수 있었으면 부지런해지지 않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돈으로 쉽게 사는 건 애정이 안 생기죠. 행복을 꿈꾸게 하는 것은 허점이에요. 채우려고 머리를 쓰게 되잖아요. 모든 걸 가질 수 없는 삶,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게 행복 아닐까요."

☞안은미는

196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무용학과와 미국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40세 춘향을 내세운 '신춘향', 빡빡머리 안씨가 빨간 원피스의 메텔로 나온 '은하철도 빵빵빵' 등 파격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9년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았다. 올 3월에는 40~60대 아저씨들이 막춤을 추는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땐스'를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