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방송이 최초로 라디오 정규 방송을 개시한 지 9개월쯤 지난 1927년 11월 25일 조선일보 5면에 희한한 전기제품 광고가 5단으로 실렸다. 상품명은 '라듸오 락스크'. 하지만 라디오 수신기는 아니다. 고주파를 발생시켜 여러 질병을 치료한다는 기계다. 광고에는 서류 가방 크기의 제품 그림과 막대처럼 생긴 장치를 여성 환자의 목덜미에 가져다 대는 그림이 실렸다.

1929년 2월 10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전자파 치료기 광고. 전등에 전기를 연결해 작동시키는 그림과 함께“의사가 못 고치는 폐병까지 낫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놀라운 건 광고에 실린 이 기계의 '효능'이다. '라듸오 락스크로부터 출(出)하는 전파는 인체에 필요한 전적(電的) 에네루끼를 각 세포에' 주입시키는 '영묘(靈妙)한 작용'으로 병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치유'한다는 것이었다. 류머티즘·신경통·신장염·요통은 물론이고, 폐결핵·위장병·편도선염 심지어 음부 무모증(無毛症)·변비·여드름까지 무려 30여 가지 병에 특효가 있다고 광고문에 썼다. 가히 만병통치 기계였다.

이 기계의 정가는 35원(약 70만원)이나 됐다. 오늘날에도 신경통 환자를 위한 물리치료 등의 용도로 고주파 치료기가 쓰이긴 하지만 전자파로 폐결핵까지 치료한다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2년 뒤엔 또 다른 '만병통치' 기계가 나왔다. 1929년 2월 10일자 1면에 큼지막하게 광고한 '마그네터'라는 가정용 전파 치료기는 한 술 더 떴다. '의사가 못 고치겟다고 하는 폐병·늑막염·중풍 등 난병(難病)도 마그네타의 위대한 영유력(靈癒力)에 의하야' 속히 치료된다고 허풍을 떨었다. '의학계의 일대 경이(驚異)'라든가 '의약(醫藥)을 초월'했다는 표현도 보인다.

이 의료 기계들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두 전파와 전기의 위력을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라디오 등장이 불러 일으킨 전자과학 쇼크에 편승한 것이었다. '이십세긔의 문명은 라듸오 문명'(1927년 1월 8일자)이라고 불릴 만큼 당시 라디오는 최첨단 문명의 아이콘이었다. '수상한' 전자 치료기들은 과학이 뭐든지 해결해줄 것처럼 여긴 일부 대중들의 맹신(盲信)을 겨냥했다.

당시는 전등 불빛 하나에도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을 느끼던 시대였다.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정도령의 제자를 사칭한 2인조 사기꾼 일당이 평남 순천군의 어느 부유한 농가를 한밤에 찾아가 신식 회중전등(플래시)을 비추며 '이 불빛은 신의 불(神火)'이라고 속인 끝에 1400원(요즘 돈 약 2800만원)을 가로챈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고 있었다. (1931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