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철·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서민 경제 활성화의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가 중소기업이자 서비스업인 의료산업의 육성이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2004~2010년 사이에 14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미국도 경기 침체 등을 겪으면서 일자리 750만개가 없어졌다. 그러나 의료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 의료는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의료 분야의 일자리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보건 의료 서비스 분야 취업자 수는 8만명이 증가하였다. 또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요양보호사, 요양기관 종사자 등 일자리 10만9000개가 새로 생겼다. 미국 의료산업도 최근 몇년 사이 일자리를 총 43만개 새로 만들었다.

의료는 노동 집약도가 매우 높은 산업이다. 의료 시설과 장비가 좋아져도 진료와 간호·간병 등은 대부분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전체 직원 4만1900여명(2007년) 중 의사 및 의학 연구자(2700여명)와 레지던트·학생(3200여명)을 제외한 행정 인력 및 보건 관련 종사자만 3만6000여명에 이른다.

의료가 단순히 노동 집약도만 높은 것은 아니다. 의료산업은 미래의 성장 동력이자 유망한 수출 산업으로 꼽힌다. 세브란스병원은 현재 중국 이싱(宜興)시와 손잡고 VIP 검진센터를 짓고 있는데 이 센터가 개원하면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등 적지 않은 전문 인력을 파견할 예정이다. 의료 기관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여기서 훈련받은 인력이 높은 소득을 받으며 해외로 진출하게 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의료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매우 높다. 매출 10억원을 올렸을 때의 고용 창출 효과를 보면 의료 서비스산업은 13명으로 제조업 5.8명의 2배가 넘는다. 이는 병·의원에 지급되는 건강보험 재정이 2%만 증가하여도 새로운 일자리가 약 1만개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도 건강보험료를 올리자고 했을 때 나올 반발을 두려워해 입을 닫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로 의료산업에 정부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 1000명당 보건 부문 종사 인력은 17.5명으로 OECD 평균(50.8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중 병원 근무 인력은 불과 5.9명이다. 우리나라의 병원 근무 인력이 OECD 평균(15.5명) 수준까지만 되면 새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생길 것으로 추산된다.

주목할 만한 외국 사례가 있다. 한때 미국을 대표하는 철강 도시였던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일자리가 급감해서 도시 전체가 황폐화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의료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도시 전체 근로자의 5분의 1이 의료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그 덕분에 도시가 활력을 되찾았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병원 2000여개와 의원 55만여개가 있다. 몇몇 대학병원은 매출 1조원을 넘지만 대부분의 병·의원이 중견기업 또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좋은 일자리 창출은 공공 근로 같은 분야보다는 민간 부문에 대한 적극 투자로 이뤄진다. 우리나라 의료의 90%는 민간이 맡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국민 건강 증진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의료산업 활성화에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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