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내 자본 백화점'… 1935년 화재로 기존 건물이 전소하자 1937년 11월 다시 신축된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자리)의 1950년대 모습.

통념과 달리 일제강점기에 수탈과 통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의 지배정책은 교묘했다.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시켜 '황국(皇國)의 충량(忠良)한 신민(臣民)'으로 만드는 황민화 정책이 펼쳐지던 1930년대, 도시의 심장으로 박동하기 시작한 백화점은 식민지 사람들이 제국의 지배와 감시라는 쓰디쓴 약을 삼키게 한 당의정(糖衣錠)이었다.

1930년 10월 문을 연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본점 건물)을 다룬 시인 김기림의 르포 기사는 정곡을 꿰뚫는다. "근대적 데파트멘트의 출현은 1931년도의 대경성(大京城)의 주름 잡힌 얼굴 위에 가장(假裝)하고 나타난 근대의 메이크업이 아니고 무엇일까. 밤하늘을 채색하는 찬란한 일류미네이션의 인목(人目)을 현혹하는 변화―수백의 눈을 거리로 향하여 버티고 있는 들창―. 거대한 5·6층 빌딩 체구(體軀) 속을 혈관과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옥상을 장식한 인공적 정원의 침엽수가 발산하는 희박한 산소, 그리고 둥그런 얼굴을 가진 다람쥐와 같이 민첩한 식당의 웨이트레스와 자극적인 음료와 강한 케이크 냄새."(조선일보 1931년 2월 21일자)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개발은 '과잉발전(over development)'이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 문명의 위광(威光)을 보고 느낀 환상 체험의 공간인 백화점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신기루가 되었다. 제국의 공장에서 들여오던 물품이 사라진 백화점은 필름 없는 상영관에 지나지 않았다.

6·25 전쟁 후유증으로 모두가 빈곤하던 1950년대는 물론 산업입국(産業立國)의 기치가 올라간 1970년대 초까지도 백화점 구내에 밀수품 단속반이 상주할 만큼 분출하는 개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국산 상품은 드물었다. 모든 공산품의 수입이 자유화된 1988년에 제동장치가 풀리자 전국 26개 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40%를 넘는 증가율을 보이며 다시 '백화점의 시대'를 열었다.

세계화와 함께 온갖 종류의 사치품이 우리를 물신(物神) 숭배자로 유혹하는 오늘, "쇼 윈도우의 화사한 인형과 박래품(舶來品)의 모자와 넥타이에 모여 서고 있는 불건전한 몽유병자의 무리들은 옆집 악기점에서 흘러나오는 레코드의 왈츠에 얼빠져 있다. 오! 심장과 뇌수를 보너스와 월급에 팔아버린 기계인간이여"라고 일갈(一喝)한 80년 전 김기림의 외침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