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46개 정부기관 업무보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의 업무내용을 공개할 경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다수 정부 부처 주요 현안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의 협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와의 정책 논의과정에 대해 함구하고 향후 결과만을 발표할 경우 새 정부의 ‘불통’ 이미지는 더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11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브리핑을 갖고 “부처업무 보고만을 공개할 경우 국민께 불필요한 정책적 혼선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업무보고를 브리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역대 인수위는 업무보고 내용을 상세히 브리핑 해왔다. 5년전 17대 인수위 뿐만 아니라 15, 16대 인수위에서도 대변인의 설명이 있었다.

◆인수위 '주요 부처 현안들 두달 뒤에 알아서 판단해 결정할 것'

대다수 정부부처는 인수위의 '함구령'으로 인수위 업무 보고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날 인수위도 기관들의 업무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현재 정부 부처 주요 현안들은 공론화를 통해 각계각층의 논의가 필요한 사항들이다. 경제 부처들의 주요 현안으로는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의 재정통합 ▲금산분리 강화안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농민 직불금 인상 등이 꼽힌다. 계층간·세대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문제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사항들이다.

인수위는 5단계에 이르는 보고 단계를 거친 후에서야 인수위의 생각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1단계에서는 각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가 이뤄지고, 2단계에서는 인수위 분과위가 부처별 보고서를 검토하게 된다. 3단계에서는 분과위별 검토 결과를 국정기획조정 분과에 제출하고 다음 단계에서 국정기획조정 분과위에서 내용을 종합한다. 마지막 5단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박근혜 당선인이 보고받는 형식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18대 인수위가 짊어진 주요 현안들의 방향은 두 달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아무런 논의 과정 없이 결정된다. 윤 대변인은 “완성되지 않은 내용을 말하는 것은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뤄진 국방부, 중소기업청, 문화재청, 보건복지부, 기상청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인수위가 판단하는 부처들의 주요 쟁점사항과 현안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인수위 '새 정책 발표하지 않을 것'

이날 윤 대변인은 인수위의 기능이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서 업무보고 브리핑이 필요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인수위가 이런 절차를 밝힌 것은 정부 부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현 정부의 정책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다시 강조했다. 윤 대변인은 "오늘 업무보고에서도 인수위원회는 낮은 자세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부처별 추진 정책에 하자를 발견하려 하기 보다는 정책 내용이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기에 적정한지, 중요 정책이 누락되지 않았는지를 살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달리 역대 인수위는 정부의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소개하고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형태의 브리핑을 가졌던 것이 통례였다. 2008년 이명박정부 인수위의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업무보고 첫날부터 사전 브리핑을 통해 당일 실시되는 교육부 업무보고의 기조와 향후 정책 방향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업무보고가 끝난 후에는 해당 분과 간사와 함께 공식 브리핑을 갖고 교육부의 학생선발과 학사운영 기능 사실상 폐지, 대학입시 관련업무의 대학협의체 이양 등 새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분야를 소개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의 인수위 때도 정순균 당시 대변인은 업무보고 후 브리핑을 통해 해당 부처의 보고내용을 소개하고 새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안을 언론에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정부부처가 아닌 이익단체가 인수위를 방문해 정책 건의한 내용 중 인수위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브리핑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완성품을 국민 앞에 내놓으려는 시도 또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과정까지 투명하게 알리고 여기서 또 한 번의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