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데뷔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그날 제 축구 인생도 새롭게 시작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유소년팀을 거쳐 1부리그 벨레스 사르스필드(이하 벨레스)에서 뛰던 김귀현(23)은 올해 K리그 대구 FC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지난달 17일 대구FC에 입단한 김귀현은 지난 3일부터 시작된 팀훈련에 합류했다. 김귀현은 "이제야 한국 프로팀에 입단한 것이 현실로 느껴진다"며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밟았다는 생각에 행복하다"고 했다.

김귀현은 2011년 3월 한국―중국의 올림픽대표팀 평가전 직후 인공호흡기를 단 아버지가 있는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려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선수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청각장애인 부모와 함께 살던 그는 꿈을 꾸듯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2004년 남해축구클럽의 축구교실 참가가 계기였다. 아르헨티나 출신 아르만도 마르티네스 코치가 섬 소년의 축구 재능을 보고 남미행을 제안했다. 14세 소년은 이역만리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체계적인 유스시스템을 갖춘 벨레스에서 9년 동안 축구 유학을 했다.

2009년 벨레스 2군 주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 뛰어든 김귀현은 '클라우디오 김'이라는 이름으로 아르헨티나 축구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10년 12월에는 벨레스 1군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성공신화를 쓰는 듯했다. 하지만 김귀현은 4차례 교체 명단에 포함됐을 뿐 1군 무대에서는 경기장을 밟지 못했다.

그는 "벨레스가 최근 4시즌 동안 3차례나 리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황금기를 달리고 있고 선수층도 두껍다"며 "지금 감독이 4년 넘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스쿼드에 변화를 주지 않는 현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벨레스에서 대구로 이적한 김귀현은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질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꼭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사진은 김귀현이 9일 대구FC 유소년축구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

김귀현의 선택은 K리그였다. 그는 "중국에서 대구보다 더 좋은 조건에 영입 제안을 해왔지만 K리그에서 인정받고 싶어 대구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귀현은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볼에 대한 열정을 꼽았다. 그는 "선수들의 볼을 차지하기 위한 집착은 마치 전쟁터의 군인 같다"며 "나 역시 악착같은 플레이로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인 몰리나(서울)가 아르헨티나 인디펜디엔테에서 뛰던 시절 너무 거칠어서 힘들었다고 하더라"며 "그가 몸싸움이 격렬한 K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169㎝의 단신이지만 다부진 체격의 김귀현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28·FC바르셀로나)를 닮고 싶은 선수로 꼽았다.

체형도 비슷하고 몸싸움과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다툼도 잘하는 마스체라노의 장점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김귀현은 "섬 출신이라 어부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자랐다"며 "10분 후를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미래보다는 지금 내 상황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김귀현의 새해 포부는 두 가지다. 만성 폐질환으로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질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포지션의 박종우와 김정우를 뛰어넘어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다. 김귀현은 지난달 대구 입단식을 한 뒤 무안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는 "내 유니폼을 입혀 드렸더니 눈물을 흘리셨던 아버지께 더 큰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