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가수에 대한 대중의 성마른 환호는 휘황한 신기루처럼 금세 바스러지곤 한다. 지난해 오디션프로 'K팝스타'에서 준우승한 뒤 YG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곡 '1,2,3,4'를 발표, 하반기 가요 차트를 휩쓸었던 이하이(17)는 이런 대중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2013년 새 아침을 맞는 기분이 누구보다 비장했다.

'올해 가요계 최고의 기대주'라는 주변 평가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 소녀 가수는 이미 충분히 알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2월 1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녹음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데뷔곡을 발표할 때까지 연습할 시간도 충분치 않았는데 갑자기 1위를 하면서 관심을 받게 되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노래 부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겁지만 저는 아직 채워가야 할 부분이 많은 빈 그릇이잖아요. 세월이 흘러도 대중의 인정을 받는 진짜 가수가 되려면 매 순간 치열하게 스스로를 단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체구의 이하이는 1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도발적 눈빛으로 팬의 호기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방송사에 가보니 키 크고 날씬하고 인형처럼 예쁜 여가수가 너무 많아 제가 초라해보였다"며 "그래서 주눅 들지 않으려고 자꾸 '내가 최고'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무대에 섰는데 그게 눈빛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눈빛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가수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요즘은 제 노래보다 눈빛이 더 자신 있다고 생각할 정도니….(웃음)"

이하이의 음색은 허스키한 중저음이면서도 듣는 이에게 편안하게 감겨든다는 강점이 있다. 그는 "제 목소리가 희귀하면서도 대중적이라는 걸 인정한다"며 "어떤 노래든 제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것 같다"고 했다.

2월 첫 앨범 발표를 앞두고 녹음 작업에 여념이 없는 신인가수 이하이. 그는“2013년에는 오디션 프로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벗고 가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수의 꿈을 꿨다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묻자 "언니"란다. 현재 실용음악과에서 보컬을 전공 중인 대학생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레스토랑을 운영하실 때 매장에 CD가 500장 이상 있었어요. 언니랑 매일 식당에서 이 음반들을 꺼내 들으며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죠.(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조용필, 주현미의 노래도 애창곡에 들어갔다.

'K팝스타' 출전도 언니의 강권(强勸)에 따른 것이었다. 이하이는 "부모님은 제가 노래 부르는 걸 반대하셨는데 언니가 '재능을 묻어둘 수 없다'며 온 가족을 설득해 제게 지원서를 쓰게 했다"고 했다. "제가 실은 겁이 좀 많아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오디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주저하기만 했었죠."

'K팝스타' 출전 당시의 기억을 묻자 "솔직히 1등을 못해서 아쉽기는 했다"면서도 "(1등을 한 박)지민이가 고음이 좋고 기본적인 발성 체계가 잡혀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많이 교정됐지만 당시 전 고음에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며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고 했다.

'1,2,3,4'에서 드러났듯 그는 소울(Soul) 음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더피(Duffy), 아델(Adele), 킴브라(Kimbra) 같은 가수처럼 어쿠스틱한 느낌의 소울을 해보고 싶다. 새 앨범도 그런 방향의 음악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TV 속에서보다 야위어 보였다. 'K팝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하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 그는 "TV 화면을 통해 저를 보면 여전히 통통해 보이기 때문에 계속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데뷔 한 달 전인 작년 9월부터 매일 2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7㎏쯤 감량했다"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열혈 팬이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라고 했다. "40대 이상 어르신 30~40명이 늘 제 무대를 따라다니시는데 그렇게 푸근할 수가 없어요. 올해 제 '사명(使命)'은 그분들이 감동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