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재정절벽(감세혜택 종료와 재정지출의 급격한 감소로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는 현상)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됐다.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도 제정절벽 방지 법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정적자 해소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3월로 미뤄진 재정절벽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1일(현지시각) 밤 11시쯤 상원을 통과한 재정절벽 방지 법안을 찬성 257표, 반대 167표로 가결했다. 가결에 필요한 최소 표 217표를 40표 차이로 넉넉하게 넘어선 것. 합의안이 상원을 통과 한지 21시간 만이었다.

다만 총 238명의 공화당 하원의원 가운데 151명과 16명의 민주당 의원은 끝까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 법안은 상원에서 찬성 89표, 반대 8표로 가결됐다. 상원과 비교하면 하원에서의 의견 대립이 더 심했던 셈.

이날 하원이 승인한 '맥코넬-바이든 합의안'은 부부 합산 연소득이 45만달러, 개인 연소득이 40만달러 이상인 가계의 소득세율을 35%에서 39.6%로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재정지출 자동 삭감(시퀘스터·sequester) 시기를 오는 3월1일까지 2개월 미루고, 약 200만명에게 지급되는 장기 실업수당 지원 기한을 1년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속세율도 현행 35%에서 40%로 인상되고, 배당세율도 24%까지 오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하원 표결이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법안 통과는 미국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이 법안을 즉각 승인하겠다"고 밝혔다.

◆ 민주ㆍ공화 모두 “일단 양보”

당초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너무 양보했다’는 민주당의 의견과 ‘자체 수정안을 만들어 표결에 부치자’는 공화당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표결에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를 인용해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은 합의안을 빠르게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은 합의안을 마찰 없이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표결을 앞두고 "상원이 고소득층 증세를 수용하면서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지 못해 곤란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하원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수정안을 상원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백악관이 너무 양보했다"며 "공화당에 유리한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민주당은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양쪽은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설득에 나서자, 법안을 즉각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바이든 부통령은 직접 하원 의사당을 찾아, 반대의사를 나타낸 민주당 의원들을 온종일 설득했다.

공화당도 재차 자체 수정안을 내놓을 경우,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식해 원안 그대로 처리하는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 재정적자 해소ㆍ정부부채 한도 상향 문제 남아

양원이 재정절벽 방지법안을 가결하면서 미국은 일단 재정절벽을 피하게 됐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부 부채 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가운데, 재정절벽 시한만 1월에서 3월로 연기됐을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양당이 오는 3월까지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면, 3월부터 향후 10년간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 가운데 1조2000억달러가 자동 삭감될 것”이라며 “재정적자 해소 방안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공화당은 올해 2월쯤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 감축협상에서 정부부채 한도 상향조정 문제를 쟁점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CNBC에 따르면 재무부는 전날 “미국의 국가 부채가 법정 상한선인 16조3940억달러를 넘어섰다”며 “한도가 상향조정되기 전까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막기 위해 특별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는 국채를 찍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미국 정부는 일단 공무원에 대한 연금 이자 지급을 늦추는 방법 등을 동원해 긴급자금 2000억달러를 조달해 예산을 충당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 두 달 정도 버틸 수 있을 뿐 2월말, 늦어도 3월초까지는 부채 한도를 늘려야 한다.

공화당은 현재 “부채 한도 증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재정절벽 위기 해결의 본질은 무엇보다 재정지출 감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절벽 해법에 재정지출 감축과 증세는 물론, 부채 한도 증액 관련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쪽의 치열한 대립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 정치권은 앞서 지난 2011년 8월에도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두고 치킨게임을 벌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국가 신용등급을 ‘AAA(트리플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