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씨가 “작은 결혼식 올리는 연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내가 직접 피아노를 쳐주겠다”고 약속했다.

"유방암 3기입니다. 임파선까지 전이됐어요. 완치되더라도 다시 피아노는 못 칠 겁니다"

2006년 9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53)씨가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에서 들은 말이다. 다른 병원 7곳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기했다. 2010년 전 세계 여성 피아니스트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全曲)을 녹음하고, 2012년 차이콥스키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다. 그런 열정을 떠받치는 동력(動力) 중 하나가 '아이들'이었다.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살이 짓물러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병원에서 우리 집까지 지하철로 왔다갔다했어요. 딸(21)과 아들(17)이 묵묵히 나를 따라오기에, '아,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애 둘 낳기 잘했다. 얘들 두고 먼저 가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서씨가 본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화예술단체 '나눔과기쁨'은 이 캠페인에 참여한 젊은이 가운데 올해 결혼하는 7쌍을 뽑아 작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서씨도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7쌍 중 가장 힘들게 사는 사람, 열심히 살고 예쁘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피아노를 쳐주겠다"고 약속했다.

서씨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면서 연주 활동을 한다. 화려한 결혼식을 수없이 봤다. 그들이 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서씨는 "다이아몬드 반지·샤넬 가방을 받아야 행복하고, 열쇠를 몇 개 받아야 결혼 잘한다는 건 한마디로 '미친 생각'"이라고 했다.

바깥에선 "강철 같은 의지로 암을 이겼다"고 칭송하지만, 서씨도 항암치료 받을 때 외롭고 무섭고 아파서 엉엉 울었다. 와중에도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곡(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연습했다. 암이 생긴 오른쪽 팔을 못 쓰게 되면, 왼팔로라도 피아노를 치고 살겠다는 각오였다. 그녀는 이혼과 암을 극복하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젊었을 때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사랑은 힘들어요. 빠지기도 힘들고, 더구나 꼭 끝나고 마니까. 나이 들수록 '인생에는 친구가 많은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중에서도 배우자가 단짝(best friend)이라면 정말 좋겠지요. 사람들은 흔히 빌 클린턴과 힐러리가 권력욕 때문에 함께 산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둘 중 하나가 화장실 갈 때도 나머지 한 사람이 따라가서 계속 얘기하는 단짝이에요."

서씨가 결혼식에서 쳐줄 곡은 '헌정'. 독일 작곡가 슈만이 부인 클라라를 위해 지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