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은 매년 성탄절이에요!"
25일 저녁 경기도 수원시 이의동 '광교 레인보우힐'. 안산 꿈의교회(담임목사 김학중) 문화복지센터인 이곳에서 열린 탈북자 5쌍 합동결혼식 뒤 신부 박명숙(42·이하 탈북자는 모두 가명)씨는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어 진짜로 내 살을 꼬집어 봤다"고 했다. 이날 신부들을 대표해 '감사 편지'를 읽은 박씨는 18년 전 북에서 결혼한 남편, 두 딸과 함께 2년 전 겨울 압록강을 건넜다. 북에선 여성들의 목걸이·귀걸이도 사실상 금지.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새하얀 장갑과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는 건 박씨에겐 꿈나라 얘기였다. "끈으로 모두의 몸을 묶고 강을 건널 때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뎠으면 휩쓸려 다 죽었을 거예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리는데, 오늘처럼 기쁜 날을 위해 말 못할 고비들을 다 넘겨온 것 같습니다."
◇자유의 땅에서 입은 꿈같은 웨딩드레스
꿈의교회는 교인인 연세대 신학대학원 상담학과 권수영 교수의 주도로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소속 전문 상담사들과 협력해 각자 사연을 가진 5쌍을 성탄절 결혼식에 불러 모았다. 길게는 18년, 짧게는 2년을 탈북과 남한 정착 과정을 겪으며 결혼식을 치를 엄두를 못 냈던 이들이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신부 5명은 모두 북한 출신이었고, 남편 중 북한 출신은 2명이었다. 남편이 조선족(2명)이거나 한족(1명)인 부부는 여성이 탈북 뒤 중국에서 은신할 때 숨겨준 인연으로 결혼에 이른 경우다.
형식도 여느 결혼식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신랑·신부 모두 가족이 남한에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 하객석은 교회 교인들이 대부분 채웠다. 성탄절을 가족·친구와 즐기는 대신 탈북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축복초 점화도 남한에 있는 신랑·신부 어머니 대표 각 1명씩이 맡았다. 식을 준비한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는 "북에 두고 온 식구, 그리움에 흘렸던 눈물 서로 닦아주며, 이곳에서 식구처럼 든든한 이웃을 얻고, 오지 못한 가족들 뜨겁게 재회할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라"고 축복했다.
◇"두고 온 가족, 아픈 기억, 잠시 잊고"
신랑 대표로 감사 편지를 낭독한 김해영(47)씨는 "신부에게 드레스를 너무 늦게 입혀주게 된 것이 아쉽다. 좀 더 일찍 입혔더라면 천사도 왔다가 울고 갔을 것"이라며 목이 메었다. 조선족인 그는 중국 남부 도시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던 30대 초반 북한 접경지역에 살던 친척의 소개로 탈북 여성인 아내 손경자(39)씨를 처음 만났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가서 집사람을 보고 와선 '이렇게 착한 여자가 없다. 무조건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서슬 퍼런 중국 공안 귀에 소문이 들어갈까 무서워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중국 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살았지요."
꿈의교회 관계자는 "합동결혼식도 1년에 두 차례 정도로 정례화하고,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결혼 전 예비교육과 결혼 뒤 가정생활 상담·훈련을 연계하겠다. 탈북 가정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든든하게 서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