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어페어'란 제목 때문에 처음에는 엉뚱한 예상을 했다.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궁중 생활에 지친 왕비가 신하나 귀족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인 줄 알았다.
왕비와 신하의 금지된 사랑도 영화의 한 축을 이루기는 하지만, 이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덴마크 출신 니콜라스 아르셀 감독의 '로얄 어페어'는 섬세하고도 진중한 역사 영화다.
캐롤라인 왕비(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불륜은 영화 시작과 함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영국의 똑똑하고 매력적인 공주였던 그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인 정신이상자 크리스티앙 7세(미켈보에 폴스라르)와 결혼한다.
유아기를 못 벗어난 크리스티앙 7세에게 사랑을 받는 대신 모욕을 당한 캐롤라인은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 프리드리히 스트루엔시(매즈 미켈슨)와 사랑에 빠진다. 계몽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개혁을 꿈꾸는 두 사람은 꼭두각시 왕을 이용해 의회와 나라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캐롤라인과 요한의 사랑은 불륜치곤 좀 밋밋하다. 감정과 욕망보다 지성과 이념이 앞선 사랑에 가깝다.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갖는 장면에서보다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루소와 볼테르를 논하는 장면에서 화학작용이 더 거세다. 연인보다는 정치적, 사상적 동지로서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결국 아르셀 감독은 통속적인 소재를 갖고서도 감정의 결이 잘 살아있는 시대극을 만들어낸 셈이다.
역사와 사랑 등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 자체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멋 부리지 않은 연출이 반갑다.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덴마크 출신 미켈보에 폴스라르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가 연기한 크리스티앙 7세는 왕비를 고통에 빠뜨리는 인물이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다.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오히려 아내와 바람이 난 요한이 자신을 떠날까 봐 고민하는 모습은 꽤나 짠하다. 그가 말하기 전에 흘리는 '흐흐흐흥'이란 웃음소리가 오래도록 귓전에 울린다.
2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하느님 덕이 아닙니다."(왕세자의 천연두 접종 성공에 유모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자 주치의 요한이 중얼거리는 말)
#장면 부패 귀족들로 이뤄진 의회를 해산시킨 크리스티앙 7세가 주치의 요한을 안고 기뻐하는 장면.
#이런 분 보지 마세요 제목만 보고 끈적한 불륜 영화를 기대한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