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영웅들'은 여전히 훈련 중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태릉선수촌을 찾았을 때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20·한체대)과 펜싱 은메달리스트 신아람(26·계룡시청)은 한 건물 같은 층에 나란히 붙어있는 체조장과 펜싱장에서 각자 오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양학선은 도요타컵 국제초청대회에서 우승하고 귀국해 회복 훈련 중이었고, 신아람은 종목별 오픈과 대통령배 대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올여름 온 국민을 잠 못 들게 했던 런던올림픽은 숱한 스타를 낳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을 준 선수'를 꼽을 때 두 사람의 이름은 늘 1, 2위를 차지한다. '끝나지 않은 1초' 오심 판정으로 억울하게 여자 에페 개인전 메달을 놓치고 피스트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던 신아람은 며칠 뒤 아픔을 툭 털고 일어나 당당히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부모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세계 최고 난도의 신기술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 역시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주위의 격려가 큰 힘"

올림픽 이후 바쁜 방송·행사 일정을 소화해낸 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체대 선후배 사이라는 두 사람은 서로를 "누나", "학선이"라고 불렀다. 훈련장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도 올림픽 전까지는 각자 훈련에 전념하느라 얼굴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올림픽을 돌아보면서 신아람은 "개인전 아픔을 잊어버리고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것이 지금 생각하면 나도 신기하다"고 했다. 양학선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아낸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했다.

추운 겨울날 함께 태릉선수촌을 달리는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과 펜싱 은메달리스트 신아람. 양학선은“아람 누나가 열심히 해서 다음 올림픽에는 꼭 금메달을 따길 바란다”고 했고 신아람은“학선이가 다음 올림픽 때까지 실력을 계속 쌓아나가 또 한 번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아람과 양학선은 올림픽 기간 런던에 있었지만 서로의 경기를 보진 못했다. 양학선은 자신의 경기를 준비하던 도중 신아람의 오심 판정 소식을 듣고 "같은 선수로서 무척 안타까웠다"고 했다. 신아람은 "내가 힘든 일을 겪은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학선이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며 "나중에 함께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착지 때 매트에 몸이 정확하게 꽂히는 장면을 보니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고 했다.

양학선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 해도 이 정도로 주목받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외모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닌데 많은 분이 '잘생겼다' '효자다'라고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 했다. 신아람은 "오심 판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얻게 해줬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그 순간을 좀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둘은 올림픽이 끝난 뒤 주변의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신아람의 경우 생판 모르는 미국의 어느 부부로부터 받은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부부가 대한펜싱협회로 보내온 편지에는 '당신이 진정한 승자다. 이 일로 상처받지 않고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양학선은 자신이 청소년 시절 도움을 받았던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난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멘토 역할을 해본 것이 가장 뜻깊었다고 했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고 했다. 양학선은 "내가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도 나는 체조에 인생을 걸었을 것"이라며 "지금도 힘들었던 과거와 날 키워주신 부모님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다음 올림픽 금 따겠다"

올림픽이 끝난 뒤 신아람과 양학선은 '사람들이 하도 알아봐서 아무 데서나 밥도 못 먹고 영화도 못 보는' 유명 인사가 됐다.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비인기 종목으로 여겨져 온 펜싱과 체조 붐으로 찾아왔다. 지난 10월 대구에서 열린 전국체전 때는 신아람과 양학선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펜싱과 체조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신아람은 "국내 대회에서 그렇게 많은 관중을 본 것이 처음이라 적응이 되지 않아서 경기를 망치고 말았다"며 "그래도 우리 펜싱 대표팀이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양학선은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체조 경기장 관중석이 매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함께 유명세를 탔던 가족도 이젠 일상으로 돌아왔다. 신아람은 그간 받은 격려금을 보탠 돈으로 어머니와 남동생이 사는 집을 조만간 옮길 예정이다. 양학선의 부모는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다. 한 건설회사로부터 후원받은 아파트는 2014년 완공 예정이고, 전북 고창군에 마련해뒀던 집터에 집을 올리는 공사는 내년에 시작된다. 양학선은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부모님이 예전과 달리 돈 걱정 없이 병원에 다니시는 것"이라고 했다.

신아람과 양학선은 여전히 국가대표 선수로서 내년 계획을 세우고 다음 올림픽을 바라본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신아람은 메달권에 드는 것, 양학선은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특히 도마 종목의 경우 내년부터 난이도가 조정되기 때문에 양학선은 여러 국제 대회에 출전해 보면서 '양학선' 기술과 현재 개발 중인 '양2' 기술 시도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은 다음 올림픽이다. 신아람은 "내 평생에 '1초 오심의 희생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거라고 생각하면 무척 괴롭다"며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금메달리스트'로만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양학선은 "훈련하면서 힘들 땐 '금메달도 땄는데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신을 집중해 다음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