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일본 나가노현의 나가노올림픽 루지(luge) 경기장. 썰매에 앉은 선수들이 스파이크가 달린 장갑을 낀 손으로 얼음을 지치기 시작했다. 가속이 붙는가 싶더니 선수들이 차렷 자세로 썰매에 누웠다. 썰매는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트랙을 질주했다. 선수들이 실수로 얼음 벽에 부딪힐 때마다 "퍽" 소리와 함께 얼음 조각들이 튀었다. 썰매가 뒤집히는 아찔한 장면도 여러 번 나왔다.

이들은 23일 나가노에서 열리는 루지 아시안컵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까지 이 대회 주니어 종목에만 출전했으나 올해는 시니어 세 종목(남녀 1인승·남자 2인승)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표팀의 유일한 지도자인 이창용(28) 코치와 선수 7명은 지난 17일부터 나가노에서 훈련을 거듭해왔다.

아시아컵 대회에 출전하는 루지 국가대표팀 7명이 21일 일본 나가노올림픽 루지 경기장 트랙 앞에서 썰매를 들고 섰다. 오른쪽 맨 앞부터 성은령, 최은주, 송가희(이상 여자부), 권주혁, 김동현, 유승현, 박진용(이상 남자부).

현재 한국 루지 대표팀은 10~20대 젊은 선수들이다. 1999년 제2회 아시안컵에서 남자 주니어 1인승 동메달을 땄던 이창용 코치가 2년 전부터 지도자로 일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 루지 대표팀은 짧은 시간에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2010년 아시안컵 주니어 부문에서 박진용(19)이 남자 1인승, 최은주(21)가 여자 1인승 우승을 차지했다. 작년 대회에선 김동현(21)과 성은령(20)이 남녀 주니어 1인승, 박진용·유승현(19)이 남자 주니어 2인승 정상에 올랐다.

정재호 대한루지경기연맹 회장은 "지금은 유망주에 불과하지만 5년 뒤 평창에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주인공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지 대표팀, 일본서 훈련 또 훈련

루지는 썰매 종목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종목으로 꼽힌다. 이창용 코치는 "루지의 평균 속도는 시속 130~140㎞ 정도로, 120~130㎞대인 봅슬레이·스켈레톤보다 빠르다"고 했다. 게다가 원통형 썰매 안에 선수들이 탑승하는 봅슬레이와 달리 루지는 몸이 밖으로 노출돼 있고, 앞으로 엎드려 타는 스켈레톤과 달리 누워서 타기 때문에 시야도 제한적이다.

당연히 사고 가능성도 가장 크다. 코스를 외우지 못한 루지 선수들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다가 균형을 잃곤 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그루지야 선수가 연습 도중에 트랙 밖으로 튕겨나가며 사망하기도 했다.

일본은 두 곳(나가노·삿포로)의 전용 경기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2016년 말이 되어야 전용 경기장이 들어설 전망이다. 지난달 썰매 5대(1인승 4대, 2인승 1대)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현지에서 외국 팀의 썰매를 빌려서 대회를 치렀다.

지난 17일 나가노에 도착한 대표팀은 오전에는 해발 700m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실전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실내에서 웨이트 트레이닝 등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이후에는 밤 11시까지 해외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함께 분석한다.

◇2인승 박진용·권주혁 콤비 기대

이번 대회에서 관심을 모으는 선수는 남자 2인승에 출전하는 박진용(19)과 권주혁(18)이다. 루지 경력은 박진용이 3년, 권주혁은 1년에 불과하다. 박진용이 앞에 탑승하는 파일럿(pilot)이고, 권주혁은 뒤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백맨(back man)이다.

박진용은 이창용 코치의 '평창팀'에 가장 먼저 합류한 선수이다. 전라북도 무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진용은 초등학교 시절 알파인 스키를 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바이애슬론을 했다. 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TV로 루지 중계를 보면서 빠른 속도에 매료됐다"며 "그해 3월 대표 선발전 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최종적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3월 대표 선발전을 통해 루지에 입문한 권주혁은 원래 사이클 선수였다. 서울체고 1학년 때 무릎을 다쳐 사이클을 그만뒀고, 이후 복싱을 시작했지만 성적이 늘지 않았다고 한다. 운동을 그만두려던 권주혁은 올해 초 이창용 코치의 권유로 루지를 시작했다.

둘은 이번 대회에서 상위권 입상을 노리고 있다. 나가노의 성인 코스(1.326㎞)에선 51초 초반대 기록을 내고 있다.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은 50초대에 들어온다. 이창용 코치는 "아직 세계 수준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워낙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기대해볼 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