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정치부

중앙선관위원회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18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결정한 것은 20일 오전 9시 30분이었다. 법적으로는 선관위 결정이 내려진 이때부터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된 것이다.

그 후, 4시간 반 만인 오후 2시.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의 6층 회의실에서 예방(禮訪)차 방문한 성 김 주한미국대사를 만났다. 김 대사는 박 당선인에게 축하인사를 하며 "이렇게 당선된 지 얼마 안 됐는데 금방 만나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15분간의 비공개 면담도 이어졌다. 이어서 박 당선인은 장신썬(張??森) 중국대사, 벳쇼 고로(別所浩郞) 일본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러시아대사를 잇달아 만났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처음 하루를 시작한 날 금쪽같은 시간을 4강 외교 사절에게 할애한 것이다.

박 당선인의 이날 주한 미국대사 면담은 5년 전, 10년 전 12월 20일을 연상시킨다. 대선 기간에 ‘반미(反美)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미 동맹을 강조했던 이명박 대통령 모두 당선증을 받은 날 미국대사를 만났다. 또 중국·일본·러시아 대사도 대부분 1주일 내에는 만나 왔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4개 국가에 파견된 우리나라 대사들이 주재국의 새 지도자가 확정되자마자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도부에 ‘죽(竹)의 장막’이 드리워 있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와 체제가 비슷한 미국, 일본에서도 쉽지 않다.

물론 박 당선인이 당선증을 받은 이날 한·중·일·러 대사를 잇달아 면담한 배경에는 선의(善意)가 담겨 있었다. 주변 4강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싶다는 의사를 신속히 전달하려 한 것을 탓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국가들이 역대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이런 관행을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현재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보다 훨씬 낮게 비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외교는 내용에 못지않게 격식(格式)이 중요할 때가 있는데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5년 뒤에는 19대 대통령 당선인이 적절한 시간이 흐른 후에 4강 대사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