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보수'가 '반시대적' '퇴영(退嬰)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80년대 이념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진보'의 수사(修辭)적 공세의 결과였다."
오는 20일 한림대 한림과학원의 '한국개념사총서' 워크숍에서 권용립 경성대 교수가 국내 '보수' 개념의 굴절사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짚는다. 권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보수주의'가 서구에서 생겨났을 당시의 건설적 의미와는 달리 국내에서 '반시대적 퇴영적 사고'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진보 세력에 의한 일종의 낙인찍기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급진 변혁 대항 이념으로 태동
권 교수에 따르면, 정치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서구에서도 17세기 이후에야 등장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파괴적 양상을 접한 일군의 사상가들은 급진적 변혁의 오류와 위험을 지적하는 포괄적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흔히 보수주의의 원조로 에드먼드 버크(1729~1797)를 꼽지만 '보수주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버크 사후인 1818년이었다. 프랑스 왕정 복고 이후 '보수(주의자)'를 뜻하는 잡지 'Conservateur'가 창간되면서 같은 어원의 말이 영국·독일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보수-진보는 근대적 개념인 자유와 평등의 의미와 실현 방법을 둘러싼 '근대 내부의 대립'이었다"고 분석했다.
◇'보수'는 '수구'와 달라
국내의 경우 '보수'라는 단어는 '혁명' '진보' 같은 서구적 근대 개념이 유입되기 전부터 있었다. 전한시대의 '전국책'이나 14세기 삼국지연의, 조선왕조실록(158회)에 등장하는 '보수'는 그저 '무언가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일 뿐 '구습을 지킨다'(수구)는 의미는 아니었다. 19세기 일본·중국에서 서양의 'con servatism' 'conservative'가 '보수'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1880년 한성순보와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도 영국의 'Conservative Par ty'를 '보수당'으로 번역했다.
◇1980년대 이후 진보의 '낙인찍기'
1950년대 이후 진보 세력은 종종 '보수'를 '퇴행'을 뜻하는 일상적 단어로 사용했지만, 정치적 개념으로 첨예화된 것은 1980년대 들면서였다. 운동권과 체제변혁 세력은 '진보=반미=남북대결 종식=한반도 평화'라는 정치공식을 선점했고, 그 대립항으로 '보수=친미=남북대결 지속=전쟁'을 규정했다. 수세에 몰린 보수는 1990년대 전반까지도 체계적 이념화에는 실패한 채 '진보'의 전향적 가치를 부정하는 퇴영적 개념으로 전락했다.
권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급격한 민주화와 탈이념화를 겪으면서 한국 정치의 인습이 총체적으로 도전받는 가운데 체계적이고 연역적인 사상체계로서의 한국 보수주의를 정립하려는 노력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진보'에 반발한 사회세력은 '수구' '극우'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보수'를 체계적 이념으로 정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도 '보수' 앞에 '개혁' '중도' '실용' 등의 장식어를 더하거나 '뉴라이트'라는 말을 쓰는 등 '보수' 이미지의 부담을 떨치려 애써야 했다.
권 교수는 정치 개념의 굴절과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진보'에 반미 친북 이념이 포함되고 '보수'가 '친미 반북'과 동일시되는 경향은 한국만의 기현상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