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3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난징(南京) 대학살 75주년을 맞아 난징에서 대규모 추모 행사를 시작했다. 같은 시각 중국 국가해양국 소속 해양감시용 B3837 항공기와 해양감시선 4척(50·46·66·137호)이 편대를 이뤄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해역에 진입했다. 중국 항공기가 댜오위다오 상공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이날 열린 추모 행사에는 9000여명이 참석했다. 집회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에선 이례적인 규모다.
오전 10시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지자 시내의 모든 자동차와 열차, 선박은 일제히 경적(警笛)을 울리며 난징 대학살 때 희생된 30만 동포를 추모했다. 행사에선 당시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정부 측 인사들이 평화를 기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이날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추도식을 취재하던 일본 교도통신 기자가 중국인 참석자들로부터 발길질을 당했다고 일본 NHK가 보도했다.
앞서 12일 밤에는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희생자 영혼을 달래는 대규모 '촛불 행사'가 열렸다. 중국인뿐 아니라 한국·미국·캐나다·그리스·포르투갈·인도·네팔·일본 등에서 온 추모객 3000여명이 촛불을 들었다. 난징 인근 양저우(揚州)에서는 12일 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시내 광장에 모여 난징에서 30만명이 학살됐다는 뜻으로 1000여개 촛불로 '南京 300000'이란 글귀를 바닥에 적었다. 지난 7일 중국 정부는 중국어 110만자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난징대학살전사'를 출간하면서 일본군위안부를 처음으로 '성 노예'로 표현했다.
난징에서 추모식이 시작된 오전 10시, 중국 항공기가 댜오위다오에 출현하자 일본은 자위대의 F15 전투기 8대와 조기경보기를 긴급 발진시켰다고 발표했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 항공기의 영공 침범은 전후(戰後)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은 "중국 해양감시 항공기가 댜오위다오 공역에서 비행한 것은 완전히 정상적 활동"이라며 "댜오위다오는 예로부터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했다. 이날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중국 항공기를 향해 "일본의 영공을 침범하지 마라"고 경고 무선을 보냈지만, 중국 항공기는 "여기는 중국의 영공"이라며 댜오위다오에 접근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항공기의 센카쿠 상공 진입과 관련, "주권 침해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한층 긴장감을 갖고 경계감시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해양감시선의 13일 댜오위다오 해역 진입은 지난 9월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 이후 17번째다. 이날 난징 추모 행사와 동시에 중국 항공기가 댜오위다오에 출현한 것이 계획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홍콩 민간단체 회원 2명도 이날 난징 대학살 75주년에 맞춰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고 대만 중앙통신사(CNA)가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홍콩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 소속의 궈사오제(郭紹傑)와 양지창(楊繼昌)은 도쿄 야스쿠니 앞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와 자체 제작한 2차 세계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위패 등을 불태우고 신사 진입을 시도했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홍콩 시위대가 댜오위다오에 상륙해 시위를 벌일 때도 참여했었다.
☞난징 대학살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 중국 침략에 나선 일본군이 만주에서 산둥(山東)성을 거쳐 같은 달 13일 난징을 점령하면서 민간인 30만명을 생매장 등 잔혹한 방법으로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그러나 일부 일본 학자들은 희생자 수가 2만~4만명 선이라고 주장한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 등 일본 극우인사들은 난징 대학살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