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의 한 주택가. 왼편으로 주민센터를 끼고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길을 50여m 더 가자 '4××-○○' 번지가 나왔다. 빨간 벽돌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1시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관이 잠겨 있던 이 집 1층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자마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방의 전등과 TV는 켜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60대 여성이 이불을 덮은 채 가지런히 누운 채로 숨져 있었다. 경찰은 "20여일 전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신은 집주인인 장모(60)씨. 70년대 초 여자 배구 스타로 이름을 날렸고, 90년대에는 청소년국가대표팀 트레이너도 지냈다.

경찰이 문을 따기 전 이 집 대문 안쪽에는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발신지는 미국이었다. 상자 안에는 캔커피, 땅콩 등이 들어 있었다. 평소 장씨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미국에 거주 중인 장씨의 언니가 보낸 것이다. 소포는 일주일 전쯤 이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장씨는 결국 이 소포를 뜯어보지 못한 채 숨진 것으로 보였다. 장씨의 언니가 보낸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건은 이랬다. 지난 10일 밤 11시. 이 집 2층에 세들어 사는 최모(65)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동생에게 소포를 보냈는데 연락도 없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장씨 언니의 전화였다. 최씨는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별안간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부랴부랴 장씨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방안에 불이 며칠째 계속 켜져 있던 것을 이상히 여긴 최씨는 2시간쯤 뒤 경찰에 신고를 했다.

최씨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관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안방 침대 위 시신은 군데군데 색이 변해 있었고, 가스가 차 가슴 부분이 부풀어 있었다. 조사 결과 집 전화기는 지난달 22일이 마지막 통화였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 통화기록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숨진 후 20일 정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장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 10여년 전쯤 어머니가 사망한 후부터는 줄곧 혼자 살았다고 한다. 발견 당시에도 현관에는 슬리퍼 한 켤레와 단화 두 켤레밖에 없었고, 2인용 침대 위 베개도 하나였다.

동네 사람들과도 별다른 교류 없이, 몇 년에 한 번씩 미국에 있는 언니와 형부가 찾아오는 게 유일한 손님이었다고 한다.

바로 옆집에서 20여년 가까이 살았다는 김모(76) 할머니는 이날 "수십년간 옆에서 살았지만 이웃과 얘기하는 것은 거의 못 봤다"면서 "장씨가 죽은 것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장씨 집에 세들어 사는 최모(35)씨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평소에 교류가 없었고, (장씨가)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살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근 수퍼마켓 주인은 "2년 전부터는 외부 활동이 거의 없어 보였다"며 "종종 술에 취해 집으로 오곤 했지만 동네 사람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가 술을 먹은 뒤 동맥경화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의 언니는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최근 귀국했다. 경찰은 "언니가 '유일한' 혈육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