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A사는 지난해 초 이모(56)씨로부터 "새 냉장고가 고장 났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씨는 수리 기사에게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안에 있던 백두산 상황버섯이 상했다.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했다. 문제가 본사 차원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한 해당 센터 직원들은 합의금조로 이씨에게 1000만원을 건냈다. 하지만 이 냉장고는 정상이었다. 수리 기사가 오기 전 이씨는 냉장고 전원을 꺼놔 내부 온도를 높였다.

이씨는 얼마 뒤 "통화 중 잡음이 들린다" "화면 색이 이상한 것 같다"며 멀쩡한 스마트폰 수리를 의뢰했다.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일단 수리해주겠다"고 하자 이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씨는 "더 이상 이 회사 제품을 믿을 수 없다"며 환불해달라고 항의했다. 이 회사는 결국 수차례에 걸쳐 새 휴대폰으로 교체해 주거나 환불해줬다.

이씨는 이른바 '감정노동자'인 대기업 서비스센터·대리점·콜센터 직원들이 고객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을 협박한 '블랙컨슈머'였다. 이씨는 멀쩡한 전자제품을 고장났다고 우기거나, 고객 응대에 문제가 있다며 직원들을 협박해 교환·환불·손해배상을 받는 수법을 썼다. 이씨는 2010년 3월부터 약 2년 반 동안 A사와 B사 직원들에게 261회에 걸쳐 2억4000만원 상당의 금품과 전자제품을 뜯어냈다.

이씨의 행각은 B 통신사에서도 이어졌다. 이씨는 최신 스마트폰 22대를 타인 명의로 개통한 뒤 정지·해지했다 개통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 응대가 불손하다"며 꼬투리를 잡고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그게 고객이 잘못한 거야? 내장을 들어낼 거야, 이××" 등 욕설도 일삼았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씨의 이런 행동에 일부 직원은 이씨의 휴대폰 요금을 대납해주기도 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상습 협박·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이씨를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대기업에선 소비자가 부당하게 항의해도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콜센터 직원들은 고객 항의가 접수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