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문화부장

어쩌면 사람들은 심각하게 화내기 싫어서, 그래 봤자 소용없어, 때때로 농담에 진심을 섞는지도 모르겠다. '뼈 있는 농담'이 아니라 사실은 '농담 입은 뼈'다.

"공부하면 뭐하노. 좋은 대학 가겠제. 대학 가면 뭐하노. 돈 많이 벌겠제. 돈 벌면 뭐하노. 소고기 사먹겠제…."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속 경상도 노인은 무슨 말이든 '소고기 사먹겠제'로 끝낸다. 사람마다 이 농담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거대한 허무, 즉 '니힐리즘'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소고기 사먹겠제' 타령은 출세하려고 아등바등 살아봤자 인생이란 별것 아니더라는 여유 있는 허무주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좀 더 팍팍한 삶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 대학 가면 취직해야 하고, 취직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애 낳아야 하는데, 그 어떤 것도 쉽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 이런 현실을 그저 무력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하면 뭐하노, 소고기 사먹겠제'로 우습게 표현되는 것 같다.

삶이 버거운 젊은이들만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도 속아서 이제 속인 사람 이름은 가물가물하고, 그저 속았다는 기억만 또렷한 세대 역시 대선을 두고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요즘 술자리에서 누군가 정치 얘기를 꺼냈다가는 "맛 떨어지는 얘기는 금지!"라는 면박을 들어야 한다. 지지 후보를 두고 언성을 높이다 술상을 엎는 풍경도 이제는 과거 얘기다. 이미 마음은 닫혀 어떤 토론도 주장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자기 후보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인다. '포기성 지지'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두 후보 중 하나를 찍을 사람들 마음은 이런 식이다.

"박근혜가 의지 강한 척하면 뭐하노. 그 세력 다시 나오겠제. 다시 나오면 뭐하노. 난리 쳐 한자리씩 차지하겠제. 차지하면 뭐하노. 소고기 사먹겠제."

"문재인이 착한 척하면 뭐하노. 숨어있던 노빠들 뛰쳐나오겠제. 뛰쳐나오면 뭐하노. 천방지축 난리들 치겠제. 난리 치면 뭐하노. 소고기 사먹겠제."

안철수를 이 소고기 타령에 넣어보니 더 재미있다. "영혼 팔지 않으면 뭐하노. 여기저기서 압박이 오겠제. 압박하면 뭐하노. 아낌없이 주는 나무 되겠제. 아낌없이 주면 뭐하노. 소고기 사먹겠제."

그러나 그 허무의 '소고기 사먹겠제' 타령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집단은 따로 있다. '유권자연대운동' '정권교체·새정치 국민연대' 이런 데 이름을 올리는 분들이다. 부동산 '떴다방'처럼 불법 영업을 하는 곳도 아닐진데 멤버들 얼굴은 비슷비슷한 조직이 왜 그리 이름이 자주 바뀌는지 모르겠다. 문화계·학계·종교계 등 자기 분야에서 이름도 있고,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양반들이다.

안철수가 주저앉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선거운동을 뛰게 만드는 데 이들이 적지 않은 '공' 혹은 '압력'을 행사했다는 게 그 바닥에서는 소문이 짜하다. 이런 걸 일반적으로 '선거운동' '득표 활동'이라 한다. 여당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국민' '연대'란 단어를 팔진 않는다.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 지금, 특정 정파의 권력 획득을 위해 국민·연대 같은 고전적 단어를 독점하는 그들을 위한 소고기 타령이다. "책 팔아주고 '님'자 붙여주면 뭐하노. 표 달라 하겠제. 표 몰아주면 뭐하노. 또 책 팔고, 영화 보라 하겠제. 팔아주면 뭐하노. 돈 벌어 소고기 사먹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