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 정치부 차장

지난 1일자 조선일보 A14면에는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 싸웠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백악관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실렸다. 승자(勝者)인 오바마 대통령이 롬니 후보를 초청하자 롬니 후보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른손을 굳게 잡은 두 사람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바마와 롬니는 대선 직전까지 한국 못지않게 치열한 '네거티브 선거전'을 벌였다. 오바마 캠프는 롬니를 비난하는 TV 광고에서 "일자리를 죽이는 뱀파이어"라고 공격했다. 롬니는 "오바마 임기 4년 동안 꿈은 산산이 조각나고 삶은 엉망이 됐으며 희망은 사라졌다"고 공격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대선이 끝난 후에는 '화해'를 의미하는 모임을 가졌다. 1시간20분 동안 배석자 없이 단둘이 점심을 함께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했으며 다음 4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장면은 꼭 4년 전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 쓴 기사를 떠올리게 했다. 2008년 11월에도 미국 대선에서 맞붙었던 여야 후보가 2주 만에 만나자 한국의 정치권과 비교하며 기사를 송고했다. 당시는 오바마 후보가 시카고의 연방정부 건물에 있는 정권인수위 사무실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초청했다. 두 사람 역시 "오바마의 사회주의 성향 정책이 우려된다(매케인)", "매케인이 당선되면 부시 대통령 3기가 계속되는 것(오바마)"이라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럼에도 서로 손을 잡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시작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공동성명으로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대선이 끝나면 승자가 패자를 초청하는 형태로 만나는 전통이 자리 잡아 왔다. 선거 당일 패자가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는 관행의 속편이다. 오바마와 롬니의 만남도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골호인(無骨好人)이기에 상대방을 초대하고, 이에 응한 것은 아니다. 승자와 패자가 화해하는 것이 대선을 치르면서 상처 입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만남으로 오바마는 승자의 아량을 보이고 '화합의 리더십' 이미지를 높였다. 패자인 롬니도 경제 위기 극복에 협력하겠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미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은 같은 당(黨)에서 대통령 후보를 놓고 경선(競選)했던 사람들끼리도 승패가 갈리고 나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보기 어려운 나라다. 어쩌다가 당사자들이 한 번 만나면 그 회동 결과를 각각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서 관계가 더 악화된 적도 많았다. 특히 올해 대선은 상대 후보의 '과거 들추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에 비례해서 대선 후에는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오는 19일 대선에서 한국에도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이는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