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 후보는 이번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이 경제민주화를 더 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강국) 공약'을 내세우며 친(親)기업적 정책을 쏟아낸 이명박 정부 5년동안 사회 곳곳의 양극화가 악화됐다는 문제 의식이 그 출발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이 잘 되면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생활도 나아지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자신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며 성과금 파티를 하거나 현금을 쟁여놓을 때 서민들은 늘어난 가계빚 이자와 높은 체감물가로 고통을 받았다. 게다가 대기업은 총수 오너 자녀들의 먹거리를 챙겨주기 위해 골목상권에 빵집을 내고 중소기업이 개척한 사업영역에 거리낌없이 진출하는 도덕적 불감증도 드러냈다.
두 후보는 재벌개혁을 통해 대기업 독식 경제구조를 뜯어 고치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겠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적지 않다. 박 후보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근절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문 후보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재벌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두 후보는 대척점에 서있다.
반면 두 후보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억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재벌총수 경제범죄 형량강화 등에는 같은 입장이다. 일감몰아주기 등 내부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적발시 엄정 처벌하겠다는 공약도 비슷하다. 또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을 엄격하게 처벌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일부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공통적으로 내놨다.
◆ 朴, 재벌의 현행 지배구조 ’인정‘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
박 후보는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에 대해 '신규'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에도 부정적이다. 사실상 재벌의 현행 지배구조는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당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주도로 꾸려진 경제민주화실천단에서 ▲대규모 기업집단법 제정 등을 통한 대기업 개혁 추진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의 방안을 제시한 바 있으나 최종 공약 선정 작업에서 이 방안들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은 사실상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이같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박 후보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김 위원장의 공약안(案)은 기존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했을 때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우리 기업이 외국기업의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점에 합법적으로 인정되던 과거의 의결권까지 제한한다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면서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하는 게 국민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 文, 재벌 지배구조에 '정조준'···기존 순환출자 해소·출총제 추진
이와 달리 문 후보는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한 재벌개혁을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해 총수 독단적인 경영을 방지해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문 후보측은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3년 내에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 시행했던 출자총액제한제를 부활해 10대 그룹에 대해 순자산의 30% 이상 출자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 30%가 넘는 출자는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해소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허용 기준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는 등 지주사 구성 요건도 강화하기로 했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와 증손회사 지분 보유 한도도 현행 20%, 40%에서 각각 30%, 50%로 강화할 계획이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 정책은 재벌 총수 일가가 거미줄 처럼 얽힌 순환 출자 구조를 통해 소수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를 끊어내겠다는 것이다. 순환출자 구조가 재벌들의 사업다각화로 인한 경제력 집중을 낳고 재벌 편향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순환출자를 3년안에 해소하라고 하면서도 그 대안인 지주사 설립요건을 대폭 강화한 부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방안이 각 재벌의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 진보 "지주사 전환하면 비용크지 않아" vs 재계 "막대한 비용 투입해야‥투자위축 불러올 것"
진보 성향의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재벌그룹은 총 16곳이고 이를 모두 해소하려면 9조6600억원의 주식이 처분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 등이 핵심 대상이라고 본다. 경제개혁연구소 측은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데 삼성전자 1조5000억원, 현대자동차그룹 6조원, 현대중공업 1조원 가량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순환출자를 끊게 되면 출자구조를 변경하면서 각 재벌들이 자연스럽게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 공약대로 3년간 유예기간를 두면 그 기간 동안 계열사간 주식지분 관계만 조정하면 되기 때문에 출자관계를 단순 해소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추정치는 순환출자구조에서 가장 주식 가치가 적은 연결 고리를 끊을 때의 비용을 계산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민주당이 지주사 전환 요건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비용증가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재계에서는 민주당 공약에 나온 지주사 전환 기준에 맞춰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경우 3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자란 외부에서 돈을 수혈한다는 의미인데, 이 것을 막는다는 것 자체는 분명한 투자여력 저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투자여력 저하는 1차, 2차 하도급업체에까지 퍼져 결국 시장에 쇼크를 주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기업 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朴, 구조개혁 의지 부족" vs "文, 실효성 의문 이행방안 구체성 떨어져"
박 후보의 재벌개혁 공약은 현 구조에 대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상조 소장은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기존 순환출자를 그대로 두고 불법, 불공정 행위에 대해 사후 제재를 강하게 한다는 의미"라면서 "이 것도 중요 과제이기는 하지만 재벌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혁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 공약은 이행방안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핵심 재벌개혁 공약으로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가 없어 폐지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재벌 중 출총제 규제를 받을 대상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도다.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33.9%), 현대로템(50%), 현대캐피탈(56.5%) 등 일부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 정도만 대상으로 거론된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중심축으로 지배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에 출총제 규제 대상이 아니다. 한 전직 공정위 고위관료는 "특정한 그룹에만 해당되는 사안을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없이 보편적인 규제로 밀어부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규제의 과잉화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풀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