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학력고사를 본 후 알몸으로 남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속에는 물질 중이던 해녀 셋이 있었고, 그들도 저도 무지 놀랐습니다. 그들은 제가 바닷속 괴생명체인 줄 알았다더군요. 웬 뜬금없는 얘기인가 하겠지만 제 소설 속 많은 얘기가 뜬금없고 맥락 없습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소설 속 서사와는 거리가 먼 일화들로 이뤄져 있고, 이런 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많은 소설이 어이없는 짓과 생각에서 나왔는데, 그 무모하고 허황한 것들로 이런 상을 받아 무용하지 않게 돼 기쁩니다."

22일 오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제43회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 출간)를 쓴 수상자 정영문(47)씨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려다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단상 앞에 선 정씨는 차분하면서도 결의에 찬 목소리로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는 소설가로서 동인문학상 수상을 격려 삼아 존재와 언어를 탐구하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해녀들이 나중에 날 놀리며 멍게와 소라를 줬는데 내가 그들에게 알몸을 보여준 대가였던 것 같다"고 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제43회 동인문학상 수상자인 정영문씨를 축하하기 위해 동료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은희경 김중혁 신경숙 편혜영 김요일 윤성희 최제훈 정영문 유희경 강정 이준규 김도연 김유진 김태용 강성은 강영숙 박지혜 김연필씨.

축사는 정씨와 요리교실을 함께 다니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53)씨가 맡았다. "정영문이 사는 동네에 놀러 갔다가 어디서 밥 먹을지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어요. '내 기억으로 한두 달쯤 전 같은데, 맛있을지도 모르는, 일식 비슷한 집이, 이 어디쯤에 얼마 후에 개장할 거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이쪽으로 가다 보면 그게 어딘지 기억이 날 것도 같아.' 제가 감탄스럽게 대꾸했죠. '정말이지, 이렇게 정확한 말은 난생처음 들어봐!'" 은씨는 "우리 사는 세계가 애매하고 모호하고 어처구니없고 부조리한데 이런 세계에서 정확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늘 현재적인 문제와 실제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분석하려는 저 같은 소설가에게 정영문의 능력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갖출 수 없는 재능"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답사에서 "여러모로 의기소침했고 빛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되면서 나도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이 상을 통해 주류 한국 소설의 답답한 한계를 깨는 작업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정씨는 고료 5000만원과 김동인의 초상을 청동 조각으로 새긴 상패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불혹(不惑)을 넘긴 동인문학상 역사상 보기 드물게 인디밴드계의 수퍼스타라 할 수 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축하공연도 펼쳐졌다. 리더 김민홍과 보컬리스트 송은지로 이뤄진 이 아카펠라 2인조의 무대는 평소 홍대 앞 클럽의 인디밴드 팬인 정씨가 특별 요청해 성사됐다.

시상식에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인 유종호 김화영 오정희 정과리 신경숙 김동식 김대산씨, 올해 집필년을 맞은 김주영 이문열씨, 김동인의 차남인 김광명 한양대 명예교수,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전 번역원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주연씨, 고 박완서 선생의 큰딸인 수필가 호원숙씨, 소설가 강영숙 김도언 김도연 김유진 김중혁 김태용 성지혜 윤성희 은희경 정소성 최제훈 편혜영 한은형 해이수씨, 시인 강성은 강정 곽효환 김요일 손택수 유희경 이준규씨, 문학평론가 정홍수 하응백 홍정선씨, 출판인 강무성 김요안 박종만 박진숙 송영석 신승철 원미선 이근혜 정은영 조연주 주일우씨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