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27)과 김상욱(24)은 한국 아이스하키를 대표하는 '용감한 형제'다. 경성중·고, 연세대 선후배 사이인 둘은 동생 김상욱이 작년 안양 한라에 입단하며 또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다. 김기성이 178㎝, 김상욱이 180㎝로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기술로 한국 국가대표의 주축 공격수로 맹활약 중이다.
성우제(20)는 한국 아이스하키가 희망을 걸고 있는 기대주다. 186㎝·87㎏으로 북미나 유럽 선수들에게도 체격 면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그는 아이스하키 최강국 캐나다에서 6년 동안 기량을 갈고 닦은 유학파다. 작년까지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AJHL(앨버타주니어아이스하키리그)에서 뛰었다.
◇세계 랭킹 18위 안에 들어라
'국가대표 형제'와 '대형 유망주'는 요즘 오후 3~4시만 되어도 땅거미가 내리는 북구(北歐) 핀란드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인적도 드문 인구 3만5000명의 작은 도시 케라바의 아이스링크에서 그들이 하키 스틱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평창' 두 글자에 있다.
아이스하키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전체 티켓 판매량의 47%를 차지한 동계올림픽 최고 인기 스포츠다. 하지만 국내 팬들은 6년 뒤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 한국 경기 장면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북미와 유럽 등 세계의 벽이 워낙 높아 올림픽 출전 12팀에 드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06 토리노올림픽을 끝으로 개최국 자동 출전 제도마저 사라졌다.
아이스하키 변방국 한국에 한 줄기 빛이 던져진 것은 지난 3월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 르네 파젤 회장은 "한국이 2016년 IIHF 총회 전까지 세계 랭킹 18위(세계선수권 출전 기준) 안에 들면 평창올림픽 자동 출전권 부여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공식 랭킹은 28위이지만 지난 4월 세계선수권 디비전Ⅰ B그룹에서 우승하며 A그룹으로 올라와 21~22위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IIHF의 순위 체계는 톱 디비전인 챔피언십에 16팀, 디비전Ⅰ A·B그룹 각 6팀, 디비전Ⅱ A·B그룹 각 6팀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경기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에 달렸다. 국내 실업팀 안양 한라가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2003년 아시아리그 창설을 주도하며 한국 아이스하키를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올려놓은 안양 한라는 이번엔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NHL, KHL(러시아아이스하키리그)과 함께 세계 3대 리그로 꼽히는 'SM리가'가 있는 아이스하키 강국 핀란드의 2부 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을 뛰게 하는 '핀란드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지난 6월 안양 한라 선수 10명이 핀란드로 건너갔다. 하지만 올 시즌 예상치 못한 NHL의 파업으로 핀란드 선수들이 대거 자국 리그로 돌아오는 바람에 김기성·김상욱·성우제 등 3명만 남았다. SM리가의 하부 리그인 메스티스의 케스키 우지마에서 뛰는 셋은 함께 살며 밥도 직접 해먹고 있다. 김상욱은 "훈련과 경기 외엔 할 것이 거의 없는 이곳이지만 평창올림픽 출전을 위해 청춘을 바친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핀란드에서 꾸는 평창의 꿈
아이스하키가 '넘버원 스포츠'인 핀란드는 5부 리그까지 운영되며 조그만 도시라도 경기장은 늘 꽉 찬다. 셋은 60분의 경기 시간 중 각각 길게는 12~15분, 짧게는 4~8분가량 얼음판을 누빈다. 10여 게임을 뛰며 김상욱이 1골 1도움, 성우제가 1골, 김기성이 1도움을 기록할 만큼 아직은 미미한 활약이지만 소득은 있었다.
세 선수의 핀란드 경험은 지난 11일 끝난 2014 소치올림픽 예선에서 빛을 발했다. 한국은 이번 예선에서 영국과 루마니아를 꺾으며 선전했다. 승점에서 영국에 밀려 조 2위로 2차예선 진출에 실패해 아쉽게 소치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었다. 한국에 뒤져 조 3위로 밀린 일본은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는 등 충격에 휩싸였다. 예선에서 1골 3도움을 기록한 김기성은 "핀란드에서 뛴 덕분에 영국·루마니아 등 유럽 선수들과 맞부딪칠 때 훨씬 여유를 가지고 플레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안양 한라는 내년 7~8월쯤엔 아예 '유로 한라'란 팀을 창단해 2부 리그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평창올림픽을 내다보는 20대 초반 중심의 한국 선수 15명이 내년부터 핀란드 선수들과 함께 '유로 한라' 유니폼을 입고 뛴다.
양승준 안양 한라 단장은 "평창올림픽 출전이란 꿈을 위해선 한국 선수들이 핀란드에서 충분한 출장 시간을 보장받아야 했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20세의 유망주 성우제는 '2018 평창'과 가장 어울리는 나이의 선수다. 성우제는 "6년 뒤 평창에서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며 "따분한 핀란드 생활이지만 큰 꿈을 위해 참고 이겨내 세계 수준의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