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오는 22일(현지시각)부터 정상회의를 열어 앞으로 7년간(2014~2022년)의 예산안을 논의한다. 하지만 이미 유럽 각국 정부들이 자국 입장을 내세우며 이견을 표출하고 있어 합의 여부가 미지수다.
◆ 예산안, EU vs 英 대립
가장 다른 노선을 탄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중기 예산 증액을 반대하며 예산 규모를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 14일 강경노선을 걷는 영국의 입장을 반영해 처음 제시한 1조유로 규모의 예산안에서 750억유로를 삭감하는 안을 발표했다. 유럽내 발전기금인 EU 결속기금에 할당되는 금액을 일부 줄이고, 농업부문 예산을 255억유로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국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게다가 차선으로 나온 예산 삭감안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모양은 더욱 복잡해졌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번 예산안에 만족할 수 없으며 더 합리적인 제안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의사를 EU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예산 삭감안이 통과할 경우 스페인에 돌아가야 할 예산이 200억유로 줄어든다는 계산에서다.
스페인 외에도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등도 예산 삭감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프랑스는 농업 부문의 보조금 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예산안을 둘러싼 회원국간 이견이 확산되면서 향후 예산 집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EU는 예산안을 바탕으로 경기부양 및 일자리 대책 등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 "아예 영국 빼자"…EU 英 압박
일부에선 EU 관료들이 영국을 빼고 예산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소식통을 인용해 "관료들이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예산안 수립과 관련한 법적,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영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예산안 합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이런 움직임은 줄곧 예산안 동결을 요구해 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압박하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브뤼셀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영국을 제외한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영국 관료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예산안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10%에서 30%로 높아졌지만 최종안은 내년에 도출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英 국민 과반 "EU 탈퇴 지지"
한편 영국 내에서는 반(反)EU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주간지 옵서버가 영국인 19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56%가 'EU 탈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특히 '무조건 탈퇴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34%에 달해 EU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U 잔류를 지지한 응답자는 30%에 머물렀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보수당 지지층이 68%로, EU 탈퇴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지지층은 각각 44%와 39%가 EU 탈퇴를 지지했다. 이런 움직임은 이번 정상회의 때 논의될 EU 예산 수립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에서는 EU 국가들의 재정통합 움직임과 예산 증액에 대한 반발이 높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7월 기고를 통해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EU 회원국 지위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