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 선임기자

이틀 뒤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1996년 세상을 뜬 6·25전쟁의 은인인 미국인 제독이 흉상(胸像)으로 환생한다. 그런 그를 백수(百壽)를 바라보는 '한국 해군의 어머니'가 지켜보게 됐으니 인연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들의 무대는 6·25전쟁터였다.

알레이 버크(1901~1996)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다. '불침함(不沈艦)'이라고 불렸던 일본의 전함 야마토(大和)를 전투기 400대로 공격해 태평양 바닷속으로 수장시킨 게 바로 그였다. 그 전공(戰功)을 잊지 못해 미국은 그의 이름을 제1번 이지스함에 헌정했다.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비열한 기습으로 시작된 것처럼 6·25전쟁도 김일성의 뒤통수치기로 개전(開戰)했다. 버크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달려왔다. 어둠의 세력을 퇴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세 바다를 누볐는데 지금 동쪽 휴전선이 옛 38선 북쪽으로 올라가는 데 특히 그의 공이 컸다.

1951년 5월 당시 육군 1군단장 백선엽(白善燁)은 동부전선에서 중공군·인민군 연합세력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화력이 달린 국군은 버크가 이끌던 미 5순양전대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백 장군은 회고록 '군(軍)과 나'에서 이렇게 당시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전대사령관 버크의 도움으로 동해안 전투에서 압도적 화력의 지원 아래 마음놓고 싸울 수 있었다." 버크는 평생 네 차례나 진해에 있는 해사(海士)를 찾았을 만큼 한국을 사랑했고 앞날을 걱정했다. 휴전 후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다시 한 번 표출됐다. 미 해군참모총장이 된 그는 경비함·상륙함·소해정·구축함·수송함 등 함정 32척을 한국에 대여했다. "육군은 소총 한 자루만 있어도 편제할 수 있지만 강한 해군을 기르려면 100년이 걸린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우리 해군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버크가 가로 57㎝, 세로 35㎝, 높이 90㎝의 청동상으로 되살아난 것은 박찬극(해사3기) 제독의 기록 때문이었다. 그는 해사 동창회지인 '옥포'에 두 차례나 버크의 업적을 알리는 글을 썼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버크는 영원히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15일 버크 흉상을 맞이할 홍은혜(洪恩惠·95) 여사는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1909~1980) 제독의 부인이다. 손 제독과 홍 여사, 그리고 시아버지인 손정도(1882~ 1931) 목사가 살아온 삶은 교과서에 실리고 남을 만큼 애국적이다. 평양 근처가 고향인 손 목사는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도중에 만난 목사의 설교에 감화돼 덥석 머리를 잘랐다가 집에서 쫓겨났다. 그 뒤 독립운동에 투신해 만주로 건너가 맹활약했는데 일제에 투옥됐다 그의 도움으로 풀려난 인물 가운데 김일성(당시 이름 김성주)이 있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은혜를 잊지 못한 김일성은 훗날 손 목사의 아들로 미국에 살던 손원태를 북한으로 불러 생일상을 차려줬다. 그가 사망하자 혁명열사릉에 안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하늘의 안배다. 손정도 목사는 남침의 원흉을 구하면서도 그를 막을 맏아들 손원일을 남긴 것이다.

마도로스로 세계를 떠돌던 손원일은 1945년 8월 해군의 모체가 된 해사대 사무소를 설치하고 11월 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창설했다. 우리 해군의 창설기념일이 그날인데, 그 택일에는 사연이 있다. 11은 '선비 사(士)'를 파자(破字)한 것으로, 해군은 신사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6·25전쟁이 터지자 손원일의 계획 아래 미국에서 들여온 백두산함이 부산 앞바다에서 첫 승전보를 전한다. 이후 그는 맥아더 원수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켰다. 손원일이 백방으로 뛰어다닐 때 부인인 홍 여사도 총만 잡지 않은 군인이었다. 우리의 첫 군함인 백두산함 구입을 위한 모금운동 아이디어를 냈고,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장교 부인들을 모아 삯바느질을 했으며, '바다로 가자'라는 첫 해군가를 비롯해 여러 곡의 군가(軍歌)를 지어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 같은 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윤 여사는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8000만원을 고스란히 해군에 맡겼다. 그 돈으로 구입한 K-6 중기관포 2문은 그야말로 민 상사의 호국혼(護國魂)인 것이다.

홍 여사는 백세를 눈앞에 둔 지금도 10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살면서 해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정성스레 싼 떡을 장병들에게 나눠주며 당부한다. "오늘의 해군력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 국민도 알아야 한다!" 정말 뼈저린 당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는지 여전히 일각에선 대통령 선거를 틈타 '제주 해군기지 무산' 운운하는 한심한 목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이제 흙으로 돌아간 손원일 제독과 버크 제독이 하늘에서 그런 얼빠진 영혼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면구스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