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수정 시술을 준비하는 여성이 배란 유도제를 직접 주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직장인 최모(37)씨는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아기가 생기지 않자 휴가를 내 3차례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아기를 갖기 위해 체외수정 시술(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체외수정 시술은 준비와 요양에 최소 1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최씨는 회사에 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는 "한 달 쉬고 온다고 확실히 임신이 되느냐, 이런 일로 휴직을 인정하는 전례가 생길까 염려된다"며 휴직 대신 사직을 종용했다. 지난 5월 최씨는 6년간 몸담았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저출산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2000년대 후반 정부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난임(難妊)휴직 제도가 도입됐지만, 난임휴직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구체적 기준 미비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며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 불임(不妊)휴직 대신 난임휴직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최씨처럼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는 모두 140만쌍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부부 7쌍 가운데 1쌍이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난임부부인 것이다. 난임전문의들은 신체적·정서적 안정이 요구되는 난임 치료를 위해 휴직은 필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임휴직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 않고 사규나 공무원 임용규칙 등에 규정돼 있을 뿐이어서 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 6년차인 교육공무원 김모(35)씨는 두 번째 체외수정 시술을 준비하며 휴직을 신청했다. 인사담당자는 "처음 한 번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거부했다. 난임시술은 대부분 여성이 받고 있는데도 인사담당자는 "난임은 남자가 원인인 것 아니냐"고 했다.

회사 측의 휴직신청 거부로 난임 여성이 결국 사직을 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난임 여성의 입장에선 아기를 갖기 위한 불가피한 사직이지만, '난임치료를 위한 사직'은 자발적 사직으로 처리돼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체외수정시술의 경우 비용이 400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실직으로 경제적 고통까지 가중되는 것이다. 지난달 박모(35)씨는 9년간 근속한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난임 치료를 위한 병원 진료가 잦아지자 회사의 퇴사 압력을 받았다는 것. 그는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에 '권고사직' 처리를 부탁했지만,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출산휴가처럼 난임휴직에 대해서도 구체적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