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변덕스럽다. 햇빛 쨍쨍한 날 잠깐 오다 마는 비를 여우비라고 부른다. 눈비 오는 날 잠시 나왔다 숨는 볕은 여우볕이다. 여우는 위험하다. '봄 불은 여우 불'이라고 했다. 여우는 속이 좁다. 옹졸한 사람을 '좁쌀여우'라고 불렀다. 여우는 불길하다. 길 가다 여우가 가로질러 가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여우는 요사스럽다. 백여우와 구미호(九尾狐)는 둔갑 설화의 주역이다. 여우의 이미지는 동서양 두루 나쁘다.
▶실제로 여우는 영리하다. 가시를 세우고 움츠린 고슴도치를 앞발로 굴려 물에 처넣는다. 고슴도치가 놀라 몸을 풀면 발로 목을 누르고 껍질을 벗긴다. 여우를 잡으려고 화약을 묻거나 걸어두면 조심스럽게 파내거나 물어서 절벽에 버린다. 여우는 땅을 파헤치는 습성이 있다. 파묻어뒀다가 상한 고기도 먹는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여우가 무덤을 파고 시신을 해친다고 믿었다.
▶사실 여우는 억울하다. 겁 많고 소심해서 낯선 상황을 만나면 어쩔 줄 몰라한다. 저보다 큰 짐승, 특히 사람을 무서워한다. 그 여우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1960년대 쥐 잡기 때 쥐약 먹은 쥐를 먹으면서다. 사람들도 여우털을 노려 여우를 마구 잡았다. 2004년 양구에서 죽은 수컷이 발견된 게 마지막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야생 여우를 되살리려고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한 쌍을 훈련시켜 소백산에 풀어줬다. 그중 암컷이 엿새 만인 그제 죽어 발견됐다. 굶거나 다친 것은 아니고 워낙 겁 많은 여우가 스트레스를 못 견딘 것 같다고 한다.
▶캐나다는 멸종된 스위프트 여우를 복원하려고 1983년 방사(放飼)를 시작했다. 여우들이 번번이 코요테에게 잡아먹혔지만 17년 동안 850마리를 푼 끝에 '멸종'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살려냈다. 2004년부터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곰도 덫과 농약에 죽고 등산객을 졸졸 따라다니다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해마다 네댓 마리씩 꾸준히 놓아줬더니 새끼 열 마리를 낳아 스물일곱 마리가 산다. 야생의 복원엔 인내가 필요하다.
▶여우놀이라는 술래잡기가 있다. 아이들이 술래에게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물으며 문답을 주고받는다. "잠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 멋쟁~이…." 그러다 "죽었니 살았니" 물어 술래가 "살았다"고 하면 도망가고, "죽었다" 하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소백산 암여우는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치러야 할 희생인지 모르지만 숨이 끊긴 채 민가 아궁이에 쓰러져 있는 사진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