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의사를 꿈꾸던 이모(21)씨는 2010년 지방 국립대 자율전공학부 자연계열에 입학했다. 의대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수능 점수가 부족했다. 이씨가 자율전공학부를 택한 이유는 의대를 못 갔어도 나중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자율전공학부는 4년 동안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그해 처음 생겼다.
2010년 대부분 대학에서 의학전문대학원을 폐지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교육과학기술부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씨는 얼마 전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씨가 다니는 학부의 자연계열이 내년부터 없어진다는 소식이었다. 학교 측은 "애초에 다양한 학문을 통섭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부를 만들었지만 자연계열 학생 대부분이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을 희망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랐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학교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과를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의대는 전과생을 받지 않았고, 학과별로 갈 수 있는 전과생도 정해져 있었다. 진로가 불투명해진 이씨의 동기생과 후배 중 일부는 휴학 내지 자퇴를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학은 자율전공학부를 만든 지 1년이 채 안 돼 폐지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학은 2010년 말 의대 체제로 복귀하기로 하고, 의대 정원을 31명 늘리고 자율전공학부 정원을 그만큼 줄이겠다는 계획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은 '다양한 학부 전공의 의료 인력을 배출한다'는 취지로 정부 주도하에 2005년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2010년 이를 도입했던 27개 대학 중 22곳이 다시 예전처럼 의대로 복귀하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문제는 의학전문대학원이 들어설 때 학부 과정인 의대의 정원이 줄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줄어든 정원을 다른 학과에 나눠줬고, 일부 대학에선 의대 정원을 활용해 비슷한 무렵 생긴 자율전공학부에 배정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대학이 학부 과정의 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없어진 의대 정원을 다른 학과에서 다시 가져와야만 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정원을 줄 때는 쉬워도 다시 가져오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의대 정원을 다시 어떻게 확보하느냐를 놓고 학교 내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자율전공학부가 애꿎은 '희생양'이 됐다. 이씨가 다니던 대학이 그런 사례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은 의대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명을 자율전공학부에서 빼 오기로 했다. 다른 과에서도 정원을 가져오지만 자율전공학부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지방 국립대의 경우도 자율전공학부에서 정원 55명을 빼와 의대 정원을 충원하겠다는 계획을 교과부에 제출했었다.
일부 대학에서 자율전공학부의 정원을 집중적으로 빼 오는 것은 자율전공학부가 '실패한 학부'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율전공학부는 애초 통섭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도입됐지만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 대부분 대학에서는 로스쿨이나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이나 약대 편입 등의 코스로 전락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해진 전공이 없다 보니 학생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으로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입시학원 관계자는 "자율전공학부가 생길 때만 해도 전문대학원 진학의 보증수표처럼 홍보하던 대학이 이제 와서 학생들을 나 몰라라 한다"며 "의대 체제로의 복귀가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몰라 생긴 문제로 본다"고 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교 안에서 정원을 어떻게 나눌지 여부는 대학 자율에 맡겨 있기 때문에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