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학자·저술가이자, 절의(節義)를 실천한 참선비로 평가받는 은봉 안방준(隱峰 安邦俊). 그를 모신 '대계서원(大溪書院)'이 훼철된 지 144년 만에 다시 세워졌다.
(사)은봉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안준)는 29일 "전국의 유림과 유지제현의 성원에 힘입어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옛 대계서원 터 건너편에 복설(復設) 기공 8년 만에 사우와 강당 등 13동을 완공, 내달 10일 준공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23억여원을 들여 8200여㎡ 부지에 복설된 서원에는 조문사·숭도문·서원·격치재·성정재·전사청·은봉유물전시관·장절문 등 13개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석축과 담장, 기와 하나하나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맡아 서원 전체가 문화재 급으로 지어졌다고 사업회는 밝혔다. 각 건축물의 현판도 동춘당 송준길과 숙종 어필 집자(집자)와 학정 이돈흥 등 명인의 필치로 제작됐다.
은봉은 1573년(선조 6년)보성읍 우산리에서 태어나 박광전·성혼 문하에서 수학했고,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한평생 처사로 자처하며 교육과 저술에 몰두했으며, 참된 선비가 지녀야 할 정신과 기풍을 환기하는 데 주력했다.
임진왜란사를 정리해 진주서사·삼원기사·호남의록 등을 남겼고, 쇠퇴해가는 사림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기묘유적·항의신편 등을 집필했다. 또 당쟁과 관련해 혼정편록·기축기사 등을 저술했다.
하지만 저서 대부분은 손실되고 남은 저서와 간찰 및 교지와 진신장의안·유안·심원록 등 132점은 전남유형문화재 303호로 지정돼 있다.
유학자 고(故) 이백순 선생은 '대계서원 복설사적비문'에서 "공맹정주(孔孟程朱)의 도통(道統)을 잇고 인의충신의 덕행을 닦아 사림의 거봉으로서 문명을 떨쳤다(중략). '우산답문'을 통해 학문과 절의의 관계를 평하여 진유(眞儒·참선비)의 표상을 제시했다"고 썼다.
은봉에 대해, 스승 성혼은 "안방준은 나에게 배울 사람이 아니라 나를 깨우칠 사람"이라고 했고, 송시열은 "하늘이 사문(斯文)을 도와 우산 안 선생을 낳으니 거의 도학과 절의를 겸비했다 하겠다"고 평가했다.
1654년(효종 5년) 82세로 세상을 떠나자 사림들은 선생의 학문과 유덕을 기리기 위해 능주의 도산사와 보성의 대계서원을 건립, 제향했으며 동복의 도원서원에도 병향했다. 숙종 30년 대계서원은사액(賜額)서원이 됐다. 순조 21년에 선생에게 '문강공(文康公)' 시호가 내려졌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헐렸다.
복설된 대계서원은 평생교육과 청소년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할 계획이다.
안 이사장은 "은봉 선생은 '학문이 절의요, 절의가 바로 학문'이라는 신념으로, 배운 바를 실천하는 참된 선비의 길을 제시했다"며 "대계서원은 선생의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충효·예절·인성 등 전통문화 교육은 물론, 청소년들이 체험 위주의 공동체활동을 경험하는 터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