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만군도와 바하마 등 카리브해 일대의 작은 섬나라들이 외국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거나, 신설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세피난처인 이들 국가가 세금제도를 바꿀 경우,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계적인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 '조세 회피지역' 카리브해 국가들 "세금 더 걷자"

영국령 케이만군도의 맥키바 부시 총리는 25일(현지시각) 외국 기업들의 등록세 인상 법안을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등록세란 금융사를 포함한 모든 외국기업이 케이만군도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세금을 말한다.

그동안 케이만군도는 전 세계 헤지펀드들에 펀드 설립 신고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케이만군도 정부가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을 전혀 부과하지 않고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로만 재정을 운영해, 조세 부담률이 낮았던 것. 그 덕분에 국제 금융기업들이 몰려와 전 세계 헤지펀드의 중심지 구실을 해 왔다. 지난해에는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를 제치고 헤지펀드 자금운용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그 매력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조세피난처로 유명했던 다른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도 잇달아 외국기업에 세금부담을 늘리려는 추세다.

바하마는 개국 이래 처음으로 모든 기업에 소득세와 판매세 부과를 골자로 하는 세제 개혁을 준비 중이다. 이 세제 개혁안은 외국 기업에도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안티과는 개인 사업자에게 주어지던 세금 공제 혜택을 줄이거나 없앨 계획이다. 조세회피처 내의 헤지펀드들이 문서 상으로는 대부분 일인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외국계 헤지펀드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트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재산 은닉처로 의심받았던 버뮤다 역시 세금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 재정난 심각…세금 인상 말고 묘수 없어

세금징수에 관대하던 이들 국가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이유는 재정난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8월 버뮤다의 밥 리차드 내각 재무장관은 "지난 2004년 이후 버뮤다 정부의 부채증가율은 800%에 육박한다"며 "국가재정을 이대로 방치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나 파산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케이만군도와 바하마 등 다른 영국령 카리브해 국가들의 재정상황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버뮤다와 이웃한 바하마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카리브해 담당자인 테레스 터너 존스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4년부터 안티과와 자메이카 등을 포함한 카리브해 국가들의 국가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세수를 늘려 재정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카리브해 국가들 대부분이 제조업 등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만한 산업여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재정적자를 메울 방법은 세금인상뿐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JP모간체이스의 통계에 따르면 카리브해 국가들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9% 수준으로 20~30%인 미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5%에 비해 낮다.

◆ "헤지펀드, 세금 올리면 떠날 수도"

헤지펀드들은 이에 대해 "세금을 더 걷으면 이들 국가가 일시적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는 볼 수 있다"면서도 "외국기업들의 이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간접세를 부과할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헤지펀드들이 이 지역으로 온 주된 이유가 조세를 피하기 위해서인 만큼, 조세 부담이 커지면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등 다른 국가들로 떠날 것이라는 것. 다만 다른 국가들은 카리브해 일대 국가들과 같은 완전한 ‘면세국(tax paradise)’이 아니라 일부 세재 상의 우대 혜택만 주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소모비용을 중시하는 금융업계의 관례상, 이 지역 국가들이 세금을 인상하면 헤지펀드들이 세금이 더 싼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펜하이머 펀드의 칼 로스 운용부문 전무는 “조세피난처가 세금을 인상하거나 신설할 경우, 이 지역의 투자 매력도가 급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이 실제로 시행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케이만군도는 지난 7월 이미 '공동체 증진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연 2만4000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외국인에게 10%의 소득세를 물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외국기업들과 이들의 이전을 우려한 국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철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