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국민 타자'의 홈런포였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24일 대구 시민야구장. 홈팀 삼성이 SK를 상대로 1회말 1사 1루를 만들었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이승엽(36). 삼성 팬들은 2002년 우승 이후 10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이승엽 홈런!"을 외쳤다.

복귀 첫 타석 상대는 SK의 우완 투수 윤희상이었다. 볼 카운트 1-1에서 윤희상의 주무기인 포크볼(시속 128㎞)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높은 곳으로 들어왔다. 이승엽이 힘껏 공을 밀어쳤다. 얼핏 외야 뜬공으로 잡힐 것 같았다. 그러나 타구는 쭉쭉 뻗어나갔다.

비거리 105m짜리 투런 홈런. 이승엽은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삼성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삼성 이승엽은 24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대구 홈 팬들에게 인사하는 그의 표정에 팀 간판 타자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드러난다.

경기 후 이승엽은 "맞는 순간 넘어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홈런이 무려 10년이란 세월을 잇는 한국시리즈 '연타석' 홈런(역대 6번째)이라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이승엽의 종전 마지막 타석은 2002년 11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이었다. 당시 삼성은 LG에 6―9로 끌려가고 있었다. 만약 패하면 3승3패를 기록해 7차전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한국시리즈 역사에 길이 남은 이승엽의 홈런이 터졌다. LG 마무리투수 이상훈으로부터 동점 3점 홈런을 터트린 것이다. 삼성은 마해영의 연속 타자 홈런까지 나오면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번 시리즈 개막을 하루 앞둔 23일 대구구장에서 만난 이승엽은 10년 전 일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볼 배합까지 모두 떠오른다고 했다. 이승엽이 쳤던 공은 이상훈의 슬라이더였다. 이승엽은 자신이 홈런을 쳤던 방향(우측 담장)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땐 너무 못했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이승엽은 홈런을 치기 전까지 20타수 2안타(타율 0.100) 무홈런으로 침묵했다. 마지막 타석에 들어설 때 '병살타만 치지 말자'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극적인 홈런을 친 이승엽은 껑충껑충 뛰더니 왼팔을 풍차처럼 힘껏 돌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LG의 포수는 올해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조인성이었다. 조인성도 10년 전을 잊지 못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그때 직구 사인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변화구로 홈런을 맞았다"며 여전히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얄궂게도 이승엽은 이번에도 변화구(포크볼)를 때려 홈런을 만들었다.

이승엽이 터트린 10년 만의 한국시리즈 홈런은 1차전 결승점이 됐다. 그가 '가을 야구' 41경기 만에 기록한 첫 결승타이기도 했다. 이승엽은 3회(고의 볼넷)와 6회에는 윤희상에게서 내리 볼넷을 얻는 등 2타수 1안타(1홈런) 2타점을 올려 1차전 MVP로 뽑혔다. 포스트시즌 통산 13개째 홈런을 수확한 이승엽은 종전 최다였던 타이론 우즈(전 두산·13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모든 초점을 선취점에 맞췄다"며 "생각지도 못했던 홈런이 나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보다 분명히 힘과 실력은 떨어졌지만 그 세월 동안 '경험'을 얻었다"며 "이젠 그때보다는 덜 무너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