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선물하는 예식장, 오직 당신만을 위한 웨딩드레스. 그레이스 켈리보다 더 어여쁜 당신. 변변찮은 드레스를 입어도 그리 예뻤는데 당신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먼 훗날 우리 딸이 또 입고요. 제 턱시도도 그래요. 우리 아들이 꼭 입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매년 결혼기념일에 드레스와 수트를 꺼내 입고 기념 촬영도 해요…'

최원석(35) 한산대첩기념사업회 기획과장은 결혼 전 이수전(27)씨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최씨는 1996년 한 계간지에 입선한 시인이고, 이씨는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전공한 화가다. 두 사람은 3년간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을 결심하면서 '찍어내듯 똑같이 하는 화려한 결혼식 말고 우리만의 결혼식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예물과 예단은 생략하고,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축제 같은 즐거운 결혼식을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양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최씨의 아버지는 "석아, 교통이 불편해서 어디 되겠나? 그라고, 비 오면 어쩔 건데? 니들 생각보다 돈도 더 마이 들고, 엄청 초라할 게 뻔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최씨 부부가 고른 예식장은 경남 통영시의 이순신공원이었다.

신부가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 입고… 최원석·이수전씨 부부가 지난 4월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최씨 부부는 검소하고 개성 있는 결혼식 계획을 만들어 수차례 양가 부모를 설득해 경남 통영 이순신공원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최씨는 20페이지짜리 '결혼식 기획서'를 만들었다. 극구 반대하는 양가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바다가 보이는 공원 언덕에 의자를 150개 놓고, 단상 대신 마이크를 세우고, 전기는 케이블 4개를 써 공원 밖 건물에서 끌어오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래도 양가 부모는 청첩장이 나오기 직전까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예식장을 알아보라"고 걱정했다.

결혼식 당일 부모님들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날씨가 화창하고 벚꽃이 만개해 하객 모두 "풍경이 정말 예쁘다"며 감탄했다. 최씨 부부의 친구 20여명이 전날부터 의자를 놓고 꽃을 꽂은 덕분에 공원은 여느 예식장 못지않은 모습을 갖췄다. 신부는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입장했고, 신랑은 일반 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맸다.

본식이 끝나자 하객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출장 뷔페를 즐겼다. 한쪽에 준비된 간이 무대에서는 최씨 부부의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친지들과 정말 친한 친구들이 모여 오후 늦게까지 덕담을 주고받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떠나는 하객들은 최씨가 연애 시절 이씨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을 선물 받았다. 최씨는 "총 비용이 6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작은 결혼식이었지만 하객들은 물론 처음에 반대하셨던 양가 부모님까지 '작은 결혼식이 정말 좋더라'는 칭찬 일색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