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강남구가 압구정동 한복판에 있는 1만3966㎡(4224평) 넓이의 공유지를 12년째 백화점 주차장으로 임대해주고 있다. 압구정동 주민들은 "8년 전 공원 용지(지상 부분)로 지정한 이 땅을 왜 지금까지 주차장으로 방치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바로 옆에 1만3966㎡(4224평) 넓이 공영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간판은 공영 주차장이지만 현대백화점 부설 주차장처럼 쓰인다.

지난 9일 이 주차장에 차를 몰고 진입하자 현대백화점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주차 안내를 맡았다. 399대가 들어갈 수 있는 이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가득했다. 백화점에서 사온 물건들을 승용차에 싣는 광경도 흔했다. 주차장 출입구에서 주차 요금을 정산하는 직원 역시 현대백화점 소속이었다.

마치 현대백화점 시설처럼 느껴지는 이 주차장은 사실 강남구 소유다. 원래는 서울시 땅이었으나 2006년 12월 강남구가 700억원을 주고 샀다.

이 땅은 원래 학교 부지였다. 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용도를 지정했지만, 인근 아파트에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집이 드물어 학교 건립이 여의치 않자 서울시는 현대백화점에 주차장으로 쓰라고 빌려줬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바로 옆 공영주차장 모습. 현대백화점은 강남구 소유인 이 주차장을 위탁 관리하면서 사실상 백화점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다 서울시는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4년 이 땅을 공원·주차장 부지로 용도 변경했다. 지상에 공원,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기로 한 것. 서울시 도시계획국은 "공원만 만들면 현대백화점이 주차장을 못 쓰게 되기 때문에 지하 주차장도 함께 만들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기득권을 인정해준 셈이다.

하지만 공원 건립은 이뤄지지 않았고, 강남구로 소유권이 넘어간 뒤에도 백화점은 이 땅을 계속 주차장으로 썼다. 강남구 측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사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근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 재건축 계획이 구체화하면 이 땅을 어떻게 쓸지 다시 고민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당분간은 현대백화점 주차장으로 내주겠다는 얘기다.

현재 강남구는 현대백화점으로부터 연 26억원 사용료를 받고 이 주차장을 위탁 관리하게 하고 있다. 서울시 소유 시절인 2000년부터 현대백화점은 12년째 이 땅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압구정동 한복판에 4000평 넘는 부지를 주차장으로만 활용하는 것에 의혹을 던지는 눈길도 있다. 서울시의회 김형식(민주통합당) 의원은 "서울시와 강남구가 도시계획까지 바꾸면서 현대백화점 주차장으로 못을 박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주민은 "백화점 주차장 아니었느냐"며 "공공시설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이 땅이 어차피 공원·주차장 부지라 다른 개발 용도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차장으로라도 쓰는 게 낫지 않으냐고 주장한다. 강남구 교통안전국은 "감정평가를 받은 결과, 직접 (주차장을) 운영하면 임대료 순수익이 21억원으로 백화점에 주는 것보다 5억원 적다"며 "2013년 위탁 관리 계약이 끝나면 이를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이 직접 맡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해당 부지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서울시와 강남구 소관"이라며 "주차장으로 쓰게 해달라는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