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북구청 문화진흥과장 김영헌(金寧憲·사진)씨가 네 번째 책을 냈다. 이번에는 '권율과 전라도 사람들'(심미안 출판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덕령의 일대기를 다룬 '김덕령 평전'저술(2006년)이 실마리였다.
"2000년대 초, 광주의 의병장 김덕령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항복의 '백사집'을 보았습니다. 행주승첩 때 '호남의 정병과 맹장이 모두 휘하에 소속되었다'라고 한 권율(權慄)의 말에 주목했습니다."
김씨는 행주대첩은 전라도의 용감한 장수들이 해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간직하며 권율과 함께한 전라도사람들의 활약상에 대해 정리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면서 권율과 그의 막하 장수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임란발발에서 서울수복까지, 육지서 치른 웅치와 이치, 독성산성과 행주산성전투(전북과 충남, 경기 일원)에서 권율과 전라도 사람들의 활약상을 살펴보고, 전라도 어느 지역의 누가 참전했는지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구체적인 작업은 2007년 봄부터 시작했다. '행주대첩비' '이치대첩비' '광주창의비' '선조실록' '호남절의록' '만취당실기' '금곡사지'를 자세히 살피니, 권율막하는 모두 178명으로 파악되었다.
이들을 다시 출신지별로 분류했다. '호남절의록'을 토대로 '난중잡록' '쇄미록' '징비록' '서애집' '백사집' '재조번방지' '연려실기술' 등 문헌과 기존 연구자료를 망라했다. 부록에 그 인물들을 꼼꼼하게 밝혀 빛을 보게 하였다.
그는 임란직후 권율이 '광주목사'로서 광주사람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육전승리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율은 당시 전라도 각 군현에 격문을 띄워 1000명의 군사를 모았고, 전라도 순찰사 시절에는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전라도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였다. 행주대첩은 조선군 전체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왜군의 서울철수를 앞당기게 한 대사건이었다고 보았다. 전쟁초기 전라도는 왜적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으나 밀려오는 피란민들을 수용하고, 인력과 물력의 동원기지가 되었다.
권율은 당시 "호남은 국가를 보위하는 근본"이라 했고, 이항복은 "(호남은) 수년동안 동서로 물자를 운반 공급했다"고 했고, 이순신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했다는 점을 그는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