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를 받던 김모(61)씨가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로 들어가 불을 지른 뒤 투신해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국무총리실·행정안전부 등 8개 부처가 있는 정부 중앙청사 안으로 배낭 속에 인화성 물질인 휘발유가 든 생수병을 넣은 채 위조된 공무원증을 이용해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들어가 방화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정부 중앙청사는 휴일이라 검색대와 보안 게이트 등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핵심부인 정부 중앙청사의 '휴일 보안'이 실종된 것이다.

(사진 위 왼쪽)14일 정부 중앙청사에 들어와 투신한 김씨 가 갖고 있던 위조 공무원증. 정식 신분증이면 있어야할 상단 태극마크, 하단 정부부처 표기 등이 없는 허술한 가짜였지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사진 위 오른쪽)정부 중앙청사의 후문을 통과한 김씨는 14일 오후 1시 15분쯤 청사 1층 검색대를 통과했다.(흰색 점선) 휴일이라 민원인의 출입이 적다는 이유로 검색대가 꺼져있어 김씨는 아무런 제지 없이 지나갔다. (사진 아래)김씨는 신분증을 대야만 열리는 청사 1층의 보안 게이트도 위조 공무원증만 보인 채 통과했다.(흰색 점선) 청사 측은‘휴일에는 민원인이 없다’는 이유로 보안게이트를 열어두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14일 오후 1시 30분쯤 정부 중앙청사 18층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사무실에서 은행원 출신의 김모(61)씨가 불을 지른 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0년간 은행에서 일하다 IMF 당시 퇴직한 후 무직자로 살아온 김씨는 2007년부터 운영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개인 블로그에서 '반(反)기독교' 성향과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강한 불만도 여러 차례 나타내고 있었다.

김씨의 범행 행적이 기록된 당시 CCTV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위조한 공무원증을 경비를 서던 의경에게 보여주고 청사 후문을 통과했다. 김씨는 범행 전에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무원증을 검색해 위조했다.

김씨가 위조한 공무원증에는 태극 마크와 소속 부서, IC칩이 없었지만 청사를 통과하는 데 의경 등이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바람에 제지를 당하지 않았다. 이후 김씨는 후문 쪽 검색대도 그냥 통과했다. 검색대 옆에는 경찰이나 방호원도 없었다. 청사 관계자는 "평일이면 인화성 물질이나 라이터 등이 소지품을 검사하는 직원들이나 검색대로 걸러졌겠지만 휴일이라 직원들이 근무하지 않았고, 검색대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 중앙청사는 평일 저녁이나 휴일에는 경찰관 대신 청사 방호팀에서 경비를 담당한다. 경찰이 근무하지 않는 시간대에는 검색대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청사 관계자는 말했다.

김씨는 청사 진입의 마지막 단계인 카드를 찍어야 열리는 보안 게이트도 그냥 통과했다. 방호원은 김씨에게 "어디를 찾아왔느냐"고 물은 뒤 위조 공무원증만 보고 김씨를 들여보냈다. 청사 관계자는 "휴일뿐 아니라 평일 점심·저녁 시간에는 출입하는 공무원들이 너무 몰려서 편의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보안 게이트를 열어둔다"며 "사건 발생 당시도 휴일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보안 게이트를 열어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업체 관계자는 "일반 기업체 가더라도 사람이 몰린다고 점심시간에 보안 게이트를 열어두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사 관리소 측은 "김씨가 손을 쭉 뻗어서 공무원증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바람에 속아 넘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 중앙청사를 관리한 사람은 경찰 5명과 방호 근무자 4명으로 총 9명이 전부였다.

이렇게 정부 중앙청사로 들어온 김씨는 계단을 통해 18층으로 걸어 올라와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사무실 왼쪽 구석으로 가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책상 위 서류 뭉치와 의자, 모니터 등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 김씨가 방화와 동시에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치자 여직원들은 방호원을 부르러 갔다. 반대편 사무실에 있던 한 직원이 소화기를 들고 달려오자 김씨는 "나가"라며 소리쳤고, 이어 달려온 방호원이 김씨를 말리려고 하자 "물을 달라"고 말한 뒤 뛰어 내렸다. 불은 이 직원에 의해 6분 만에 꺼졌으며 서류 뭉치 등이 불탄 것 외에는 인명 피해나 별다른 재산 피해는 없었다.

김씨는 투신 당시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이 든 약봉지를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