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보〉(80~87)=바야흐로 바둑계는 춘추전국시대다. 랭킹과 타이틀 보유자 이름이 쉴 새 없이 요동친다. 첫손에 꼽히던 우승 후보가 초반 탈락하고, 아직 예선 통과도 벅차 보이던 신예가 정상의 일각을 점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통신 발달로 세계의 벽이 무너지면서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뭔가 허전하다. 영웅의 실종 속에 다관왕(多冠王) 스토리는 아득한 태고적 신화로 박제돼 가고 있다.
2분 만에 80이 놓였다. 왜 84 자리로 끊지 못했을까. 참고도를 보자. 일단 5로 이은 데까지는 필연. 이어 위쪽 흑은 6으로, 아래쪽 대마는 10까지 각각 '따로국밥'으로 수습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된다면 백은 중앙이 연결해 간 두터움은 있지만, 애써 잡았던 흑 3점까지 준동하게 돼 재미없는 결말이다.
81도 강인한 수. 84 자리로 이으면 무난한데, 백 '가'로 정비한 이후 '나'의 단점이 신경 쓰인다. 결국 84로 끊겼지만 역시 '따로국밥' 전술로 '두 개의 전쟁'을 택했다. 8분 만에 86으로 전열을 정비하자 흑은 돌연 87에 붙여 응수를 묻는다. 흑 '가', 백 '다', 흑 '라', 백 '마'의 진행을 예상하고 있던 검토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