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는 불리한 전세를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는 강력한 무기개발에 성공했다. 1000kg에 달하는 탄두를 1000㎞까지 쏘아 보낼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만든 것이다. 폰 브라운 박사가 총책임자인 소위 '로켓팀'이 개발한 이 신무기에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는 '보복의 무기 제2호(Vengeltungswaffe 2, V-2)'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행히 나치가 이 미사일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직전에 전쟁이 끝났다.

전후에 미국과 소련 군부는 나치의 군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특히 독일이 개발해 가지고 있던 액체연료 추진 로켓 기술이 첫 번째였다. 두 나라는 최대한 많은 과학자를 자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문제는 군부가 원하는 과학자가 하나같이 나치 협력자라는 데에 있었다. 나치 통치하의 독일에서 그 어떤 과학자도 당이나 당과 연계된 기관에 가입하지 않고는 그토록 민감한 연구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과학자는 피지배 국민을 노예처럼 학대하고 착취하여 실제 전범으로 기소될 소지가 충분했다.

나치 전범을 미국에 들일 수는 없다는 국무부와 이들을 데리고 오려는 전쟁성 사이에 갈등이 터져나왔다. 두 부서는 질문조사 방식으로 미국에 데리고 올 만한 과학자를 선별하자는 타협을 도출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금 전시 독일 과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밝혀졌다. 나치의 과학자는 로켓공학에서 방사능의 영향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앞서 있었던 것이다.

미국 망명 허용 여부는 '그가 열정적인' 나치였는가 아닌가 하는 모호한 기준에 따랐다고 하나, 그보다는 얼마나 미국의 이익에 필수불가결한 연구를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을 것이다. 일단 100명이 넘는 독일 물리학자와 기술자가 이 검열 과정을 통과했다. 그들은 흔히 '페이퍼클립 과학자(paperclip scientist)'라고 불렸다. 미군 조사관이 이 과학자들의 중요성을 표시하기 위해 이들의 서류 위에 클립을 끼워 두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70년대까지 지속된 소위 '페이퍼클립 프로그램'을 통해 총 1700명의 독일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와서 미국의 우주개발 및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

무술 고수는 양아치처럼 주먹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 법. 강력한 무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현명하게 통제하는 지혜가 더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