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역대 우리 정부는 모두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의 대북정책 추진'을 구호로 내걸었다. '국민적 공감대'라! 온 국민의 공감을 얻겠다니 좋은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국민적 분열대'만 넓어졌다. 정권이 변화할 때마다 대북정책은 심하게 출렁였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확대되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소위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정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야권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대표적인 그룹인 까닭이다. 당연히 이들의 견해 차이가 줄어든다면 정책의 공감대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자신이 속한 진영 논리를 대변할 뿐이었다. 심지어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광경도 보았다. 그것도 공식적인 세미나 자리에서 상대방의 정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격에 대해서였다. 마치 자동차 접촉 사고가 일어나면 처음에 다투던 잘잘못은 어느새 사라지고 결국 "너 몇 살이야?"라고 삿대질하는 유치한 상황으로 번지는 것처럼.

정말 대북정책에서 국민적 공감대란 불가능한 것인가. 과연 대북정책에서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는 좁혀질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난봄 보수와 진보의 북한 전문가 각각 4명씩 모두 8명으로 연구진을 구성했다. 논의 주제는 경제 분야로 한정했다. 대북정책의 모든 분야를 다루기에는 시간 제약도 있었지만 경제가 실증적 토론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분야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핵심적인 주제 16개를 선정한 후 6개월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어느 진영도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당연히 합의에 이르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지만 의외로 접점을 찾은 경우도 꽤 많았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하나의 책으로 묶고 있다.

이번 작업을 통해 크게 느끼고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공부의 중요성'이다. 현실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념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해서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는 근본적 이념의 차이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공부량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현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요구되는 공부나 이해의 양(量)이 50이라고 하면 대개 실제 공부는 20이나 25 또는 35 정도만 한 채 나머지는 이념으로 채운다. 실상이 아닌 상상으로 메꾸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적인 토론이 될 리가 없다. '100분 토론'이 아니라 '1000분 토론'을 해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심야 토론'을 넘어 '새벽까지 토론'을 해도 자기주장만 펴다가 끝나기 마련이다.

예컨대 '정경(政經)분리'냐 '정경연계'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지만 실제로 기업이 입은 이익이나 손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충분한 이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제대로 된 토론이 될 리가 없다. 서해(西海) 공동어로구역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어로(漁撈)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북방한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양쪽에 같은 거리,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한들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텐데 말이다. 우리에겐 이미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이라며 문산~개성 간 화물열차를 개통했지만 실어 나를 물건이 없어 오래지 않아 중단했던 경험이 있다.

한쪽은 현상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데 다른 쪽은 '상상'으로 이야기한다면 토론은 성과도 없고 의미도 없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꼴통'은 양진영 모두에 있다. 흔히 '꼴통'이란 단어는 보수에 붙어다니지만 진보에도 무수한 '꼴통'이 있는 것이다. 결국 '꼴통'이란 '공부 안 하는 사람'의 다른 표현이며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공부 안 하는 꼴통'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들이 공부량의 차이를 이념의 차이인 양 포장할 뿐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보수든 진보든 전문가라면 늘 공부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자성(自省)도 뒤따랐다. 만약 동일한 양의 자료와 정보가 주어지고 동일한 수준의 공부가 뒷받침된다면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