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냐?’고 물으니 ‘응, 네가 좋아하는 고기야’ 나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개 농장의 자물쇠 뜯고 잠입 개와 닭을 ‘구출’해 나와 법정에선 특수절도죄로 판결

뮤지컬 배우 출신 박소연(42)씨를 만난 것은 내년부터 '애완동물 등록제'를 시행하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은 뒤였다. 애완동물을 버리지 못하게 제도까지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지금은 재난 상황이다. 애완동물이 너무 많이 버려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숫자가 됐다. 전국의 보호소로 신고된 숫자만 한 해 10만 마리다. 신고 안 된 동물을 감안하면 이보다 다섯 배쯤 될 것이다."

10년간 뮤지컬 무대에 섰고, 그 뒤로 10년째 그녀는 동물 보호 운동의 투사(鬪士)가 됐다. 현재 회원 수 7만명쯤 되는 '동물사랑실천협회'의 대표다.

그녀는 반죽에 계란이 섞였다는 이유로 빵조차 먹지 않을 만큼 채식주의자고, 한때는 학대받는 개를 구출하겠다며 개 농장에 무단침입해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대화하는 동안 그녀의 말 속도는 빨랐다. 그동안 참을 수 없는 일들을 속에 많이 쌓아둔 모양이다.

"자기가 키우던 애완견이 아예 못 쫓아오도록 시골에 가서 버린다. 재개발 지역에는 개만 남겨두고 가기도 한다. 상자에 넣어 고속도로에도 버린다. 우리가 세 번 구조했다. 터널 속에서 고양이도 버린다. 이런 제보를 두 번 받았다. 동물병원 앞에 두고 가거나, 동물보호단체에 개집과 편지를 놓고 간다. 간혹 '데리고 가라, 아니면 버린다'고 우리 쪽에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박소연 대표는 “유기 동물은 열흘 안에 안락사하거나, 아니면 입양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애완동물 등록제가 시행되면 개선될까?

"등록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등록 안 한 애완동물을 일일이 찾아내 과태료를 물릴 수 있을까. 관리 감독을 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우리나라는 335만여 가구(전체 가구의 14.7%)가 애완동물을 키운다. 애완견 발바닥에 신발도 신겨주고 똥도 닦아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한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잘 기르던 애완동물을 버릴까?

"공동주택에서 주변의 시선이나 간섭을 받을 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사람들에게 마구 짖고 물거나, 똥오줌을 계속 못 가리면 밉상이 될 수 있다. 애완동물을 훈련시키지 않은 결과다. 신혼부부가 아기를 낳을 때도 많이 버린다. 애완동물이 병에 걸리면 만만치 않은 치료비 때문에도 그렇게 한다."

―애완동물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믿고 맡길 만한 누군가에게 줄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선진국의 동물 보호소에서는 개인이 포기하면 대신 맡아준다. 그러지 않으면 버려져 떠돌게 되고, 이를 구조하려면 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 동물보호소에서는 안 받아준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동물을 버리면 과태료 100만원이라는 규정만 있다. 대신 개장수든 누구든 간에 팔아넘기면 문제가 안 된다."

―전국에 유기 동물 보호소는 몇 곳이나 되나?

"지자체 위탁 시설은 200곳쯤 된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보호소는 현재 우리밖에 없다. 우리 보호소에는 개 270마리와 고양이 30마리가 있다. 보호소마다 수용 능력의 한계가 있다. 법적으로 7~10일간만 보호해준다. 주인이 나타날까 봐 기다리는 것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시키거나 입양시킨다."

―안락사시키는 게 옳은가?

"안락사에 대해 정서적으로 거부감은 있다. 그러나 감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좋다'는 속담처럼, 동물 입장에서는 고통받아도 사는 쪽을 더 원하지 않을까?

"수용 한계를 넘어섰을 때 동물끼리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하는 게 옳을까. 유기 동물에게는 안락사가 아니면 입양밖에 없다. 사람들은 충무로 애견센터에서 돈 들여 애견을 구입해도, 유기 동물은 잘 입양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호소에서는 키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줘버린다. 동물을 과도하게 많이 기르는 데만 집착하는 '애니멀 호더(hoarder)'에게도 넘어간다. 다시 구타당하고 굶고 버려진다."

―보호소에서 유기견을 개고기 상인에게 되파는 것이 보도된 적 있다.

"부산의 한 위탁 보호소에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는 위탁 시설로서는 이윤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당신 말을 계속 듣고 있으면 유기 동물에 대한 해법은 없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애완동물 번식을 규제해야 한다. 충무로 애견센터가 번식의 메카다. 애견센터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쉽게 구입하고 쉽게 포기한다. 이를 엄격한 허가제로 바꿔 개체 수를 제한해야 한다. 또 애완동물을 사서 키우기보다 버려진 동물을 입양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한번 버려진 동물은 심리적 상처가 깊어 키우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철이 더 들었다고 해야 하나, 주인 눈치를 보며 문제 행동을 덜 하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당신은 집에서도 유기 동물을 키우나?

"개 네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다 학대받았던 동물이다. 한 녀석은 '자폐증'에 걸린 것처럼 1년 내내 구석에 숨어 벽 쪽으로만 보고 있었다. 먹이를 주면 몰래 나와서 먹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또 다른 녀석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꺾였다. 주인은 병원비 때문에 그냥 버렸다. 그것도 모르고 이 녀석은 다시 주인집을 찾아와 서성댔다. 동네 청년들에게 보신탕용으로 잡혔다가 탈출해 우리에게 구조됐다. 나와 함께 지내면서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

―고양이가 밤에 울면 이웃의 민원이 없나?

"고양이는 발정할 때만 운다. 너무 심하게 우니까 주인이 감당을 못 해 버린다. 집안에서 키우려면 중성 수술을 해줘야 한다. 그러면 울지 않는다."

―인간의 편의만 생각했지, 그것도 잔인한 행위가 아닌가?

"애완동물은 인간 정서를 위해 길들여졌다. 동물을 식용으로 쓰든 실험용으로 쓰든, 모두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잔인하다."

이날 오후 늦게 만났을 때 그녀는 일을 쫓아다니느라 한 끼도 못 먹었다고 했다. 내가 쿠키를 권하자, 그녀는 "채식주의자라 계란이 들어간 빵을 먹을 수 없다. 젓갈과 생선도 안 먹는다"고 했다.

―결혼은 했나?

"못 할 줄 알았는데 채식주의자 남편을 만나 얼마 전 혼인신고를 했다. 사실 나는 어려서 고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엄마와 함께 서울 신당동 골목을 지나갈 때였다. 정육점 앞에서 사지가 달린 냉동육을 나르는 걸 봤다. 내가 '저게 뭐냐?'고 물으니, 엄마가 '응, 네가 좋아하는 고기야'라고 답했다. 나는 그림책이나 TV에서 나오는 동물을 보면 늘 친구처럼 생각해왔다. 내가 지금까지 그 친구들을 먹었구나.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충격으로 고기를 끊었다."

―그때 동물 보호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돈을 많이 벌어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스물두 살 때 오디션에 참가해 뮤지컬 배우가 됐다. '장보고' '사운드오브뮤직' '넌센스' '난타' 등에 출연했다. 그 직업을 사랑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서울 명동에서 '개 식용 반대 1인 시위' 현장을 봤다. 그 단체의 자원봉사자가 됐다. 순전히 개인 차원의 봉사였다. 나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라 조직을 만드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일에 빠지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다."

―무대는 어떻게 하고?

"처음에는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차 안에서 3시간 자는 걸로 때울 때도 있었다. 부산에서 연락이 와도 '내가 안 가면 방치되겠구나'하는 생각에 갔다. 당시는 동물 보호 개념도 조직도 별로 없었을 때다. 처음 사무실도 없이, 인터넷 동호인 모임으로 몇 명이 같이하니까. 그렇게 10년이 지나면서 가장 큰 동물 보호 시민단체가 됐다."

―말이 나온 김에 보신탕도 논해보자. 현행법상 개고기는 '축산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도축과 가공에서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개고기 식용의 현실적 수요를 감안하면 식용을 인정하고 위생 관리를 받는 게 옳지 않은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식용'으로 분류되면 그 동물에 대한 보호는 끝이 난다."

―식용과 애완용은 다르지 않은가?

"흑인·황인·백인이 다 사람인 것처럼, 개도 다 똑같은 개일 뿐이다. 누가 식용이고 애완동물인가. 우리의 누렁이와 발발이는 식용이라고 먹고, 수입 개는 애완동물로 사랑받아야 하나. 개 농장주들도 이미 자신의 일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을 알고 있다. 보신탕집도 반쯤 사라졌다. 추세가 바뀌고 있다."

―당신은 작년에 한 개 농장의 자물쇠를 절단기로 뜯고 발바리 다섯마리, 닭 여덟마리를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들고 왔다. 1심 법정에서 특수절도죄가 인정돼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활동가로서 이벤트가 필요했나?

"당시 배설물이 쌓여 있고 밥그릇은 말라있었다. 동물들은 방치돼 있었다. 그들의 눈망울을 보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현재 구출한 그 동물들은 보호소에 있다."

―하필 왜 새벽에 들어갔나?

"대낮에 감행했다면 현행범으로 잡혀 동물을 구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직후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고 문제가 되면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사유재산 침해라고 생각지 않나?

"재산에 대해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공탁금도 맡겨뒀다."

―그런 상황에 놓인 가축은 많다. 전국을 다니면서 다 구조해야 하지 않겠나?

"그때는 내가 직접 봤기 때문에…. 작년에 전북 순창의 한 축산농가에서 사료 값이 비싸 굶겨 죽이는 소 아홉 마리도 데려왔다. 일단 다른 농장에 옮겨놓았다."

―그 소들은 '도축용'으로 길러진 게 아닌가?

"비록 도축용이지만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로 소를 굶겨 죽이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차라리 빨리 팔아서 도축하라고 했다. 동물도 똑같은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 인간을 위해 죽는 것도 서러운데.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행복해야 하지 않은가."

―몇 년 전 '구제역' 파동으로 소를 파묻을 때 주인들이 '자식 같은 소'라고 슬퍼했다. 안 그랬으면 도축용으로 팔아먹을 소였는데도.

"정말 자식 같다면 어떻게 도축용으로 팔 수 있겠나. 우리는 동물을 가둬 살을 찌우고,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투여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집단 생매장을 하고, 침출수가 생기고, 그 물을 우리가 마신다. 동물 보호는 결국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기를 좀 적게 먹자고 계속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

―온 세상 사람들이 즐겨온 식습관과 싸울 것인가?

"나는 채식한 뒤로 감기나 병에 걸린 적이 없다. 휴가를 안 가고 일해도 쓰러지지 않는다. 얼굴에 뾰루지도 안 난다. 알레르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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