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현 선임기자

지난 2006년 재일교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재일(在日) 한국민단 지도부에 조총련·한민통 출신이 잠입해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망해가는 조총련과 이른바 '화합성명'을 발표하고 야합(野合)을 시도했다. 민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조총련과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반(反)국가단체로 규정된 한통련(구 한민통)에 민단 조직이 굴복하는 형식으로 억지 화해를 만든 것이다. 이 공작에는 당시 노무현 정권이 깊숙이 개입했고, 신분이 공개된 조총련 간첩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이에 분노한 민단 구성원들이 들고일어나 좌익 지도부를 몰아내고 조총련과의 야합을 무효화했다.

당시 야합의 무대가 됐던 조총련 중앙본부가 경매 처분을 통해 사라질 운명이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대지 725평에 지상 10층, 지하 2층의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는 일본 법원의 결정에 따라 경매 준비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조총련계 신용조합의 연쇄 도산에 따른 채무 627억엔을 일본 정부의 채권 회수 기관인 정리회수기구(RCC)에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조총련이 제기한 상고를 기각한 데 따른 것이다.

조총련 중앙본부는 반세기 가까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왕조를 떠받쳐온 대남공작의 전초기지이자 사실상 '주일(駐日) 북한 대사관' 역할을 했다. 건물과 토지의 자산가치는 한때 200억엔대까지 치솟았었지만,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난 2006년 자산가치는 36억엔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조총련이 이 건물을 다시 매입할 여유는 없다. 조총련 오사카 본부와 아이치현 본부 건물은 경매절차를 거쳐 이미 일본 부동산 회사로 넘어갔다. 조총련은 산하 상공인들에게 중앙본부 건물을 낙찰받도록 지시했지만, 이에 응할 상공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 한국민단 유지들 사이에선,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매각됐던 미국 워싱턴의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을 되찾았듯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을 매입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도쿄에서 만난 민단 관계자는 "조총련 본부 건물은 북송된 재일교포들의 피와 땀,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라며 "악(惡)의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우리가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 북송 초기(1959~1964년)에 1인당 지참금액을 4만5000엔으로 제한했다. 당시 북송동포들은 재산을 처분하고 남은 돈을 모두 조총련에 헌납하고 북송 길에 올랐다. 조총련은 그 돈으로 도쿄 도심 1급지에 토지를 사들여 현재의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을 지었다. 또 다른 민단 관계자는 "김씨 왕조의 주일대사관용으로 지어진 건물을 접수한다는 것은 조총련에 대한 민단의 최종 승리 선언이며 한국 주도의 통일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도쿄 도심에 문화·교육을 위한 복합 거점 공간 확보에 고심해왔는데 불과 600억~700억원에 이러한 입지의 건물을 확보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민단 관계자도 있다. 대한제국 멸망 후 그 왕실에 주어졌던 거처(현재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를 주일 한국대사관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옹색하게 대사관을 마련했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 매입은 일상사에 얽매여 왜소해진 재일 한국인들에게 역사의식을 깨우쳐주는 교육 효과도 있다. 일본 당국의 배려와 협조가 관건인데, 일본 정부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한일 양국의 미래 비전 공유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는 양국 정부 간 협조가 불가능하면 민간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