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못 오고 내일이면 온다는 그, '고도'가 올해 다시 온다.

연출가 임영웅(76·사진)씨가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르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오는 13일 개막한다. 1969년 국내 초연한 '고도'와 임씨의 인연은 어언 43년. 한 작품과 연출가가 이토록 길고 오래 이어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43년째 기다리도록 만들어온 임씨는 2일 "아무리 다시 해도 늘 새롭게 여겨지는 것이 '고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초연 무렵,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화제작을 찾다가 '고도'를 떠올렸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장치가 간단해서 적격이다 싶었다.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됐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원작을 책으로만 읽었지 해외 공연은 본 적이 없었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고 배우들도 몰랐다. 내내 암중모색(暗中摸索)이었다. 결국 '모르겠다, 내 식대로 하자'고 방향을 정했다. 그때도 평론가들은 전위극이니 현대극이니 온갖 해석이 분분했지만, 거기에 현혹되지 말자 싶었다.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로 풀면 되는 거라고 믿었다."

한창 연습 중이던 그해 말, 원작자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도 축복한 첫발이었다. 신문에 수상 기사가 나가니 다들 어떤 작품인지 보고 싶다고 몰려들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예매가 활발하지도 않던 43년 전,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이미 매진이었다. 당시 표값은 200원. 이번 공연은 3만원(학생은 2만원)이다. 초연 배우는 김성옥·함현진·김무생·김인태였다. 이후 전무송·정동환 등 명배우들이 '고도'의 무대를 빛냈다.

1985년 임씨가 전 서울여대 교수인 아내 오증자씨와 함께 사재를 털고 빚을 얻어 세운 산울림소극장 개관작도 '고도'였다. 그래서 '고도'에게는 산울림소극장이 한국의 고향집이다. 서른셋 청년이 일흔여섯이 되기까지, 세월을 바치고 재산을 바치고 마음을 바친 작품이 '고도'.

임씨는 동반자인 '고도'와 함께 아비뇽에도 다녀오고, 베케트 고향인 더블린도 방문했다. 폴란드 그다니스크와 일본 도쿄도 돌았다. 현지 관객들은 한국적 리듬과 유머가 살아 있는 '임영웅식 고도'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연출 스타일로 알려진 그의 '고도'는 43년을 지나오면서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다. 글자 하나도 삭제하거나 첨가하지 않았다. 손대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유발하는 작품이긴 하다. 그래도 참았다. 베케트가 나보다 잘 썼으니까."

그러면 예전에 본 관객은 올해 똑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는 걸까? "당연히 다르다. 이야기는 뻔하고, 대사와 장면은 같지만, 연극적인 표현의 여지는 일부러 찾지 않아도 새롭게 발견된다." 그래서 그는 '고도'를 두고 "참으로 희한한 작품"이라고 했다.

원작 그대로의 '고도', 사람 사는 이야기로 풀어낸 임영웅식 '고도'는 올해도 산울림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05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한명구와 박상종이 다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으로 나온다. 11월 4일까지, (02)334-5915